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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3 (14:03:24)

신자(信者)와 신자(神子)

 

< 김수환 목사, 군포예손교회 >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종이 아닌 아들의 신분 가지고 있어야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혈연관계는 모든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우선한다는 말이다.

 

피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라면 물은 혈연 이외의 일반적 인간관계를 의미한다. ‘물의 관계는 아무리 잘하려고 애를 써도 한계가 있다. ‘피의 관계에서는 너무 쉽고 자연스럽게 되는 일들도 물의 관계에서는 어렵고 사무적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시부모와 며느리와의 관계에서 실감케 된다. 고부관계는 숨이 막힐 만큼 완벽에 가깝게 살아도 거기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게 된다. 매일 정확한 시간에 본분과 의무를 다해도 메워지지 않는 고부 사이의 간극은 차라리 운명적이다. 그러기에 시가에서의 삶은 잘못해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잘해도 문제가 없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친정부모는 매사가 서툴고, 다시 안 볼 것처럼 다투고 싸워도 하룻밤 지나고 나면 고무줄처럼 본래 자리로 되돌아오게 된다. 부부싸움이 수년이 지나도 자국이 남는 걸 보면, 분명 칼로 물 베기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야말로 정말 칼로 물 베기이다. 심하게 다투고 싸워도 잠시 시간이 지나고 나면, ()표면처럼 표시가 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되 자녀가 아닌 종으로써 섬기지 않을까, 매우 염려하였다(4:1-31). 당장 겉으로 드러난 열심만으로 보면, 자녀는 감히 종의 신앙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한 것처럼, 자녀는 종에게 멸시를 받게 되어 있다.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바울 사도가 전해준 순수복음으로부터 다시 율법주의로 회귀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종의 신앙은 사람들에게 매력이 있고, 호감이 있어 보인다. 아직 미숙한 어린자녀들의 신앙과 비교될 땐 더욱 그렇다. 자녀는 부모와의 삶과 관계를 중요시 여기지만, 종은 오직 일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종의 신앙은 본색을 드러내게 된다. 즉 며느리가 의무적으로 시부모를 섬기는 것과 같이 형식과 겉치레만 남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교 신앙에 있어선 일이나 열심보다도 생명과 신분의 문제를 훨씬 더 중요하게 다룬다. 종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유업이 없다. 왜냐면 그에겐 아버지의 생명이 없고, 자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경륜은 우리가 단지 종교적인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모든 유업을 물려받는 것이다.

 

지난 90년대 경배와 찬양이라는 프로그램이 열풍처럼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무릎 꿇고, 양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을 향해 찬양과 경배하는 모습은 너무 감동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들이 아닌, 종교심을 갖고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내면에 주님의 생명 없이 바깥의 하나님만 높이고, 열심을 내고 만다면, 역시 종의 신앙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요, 자칫 우상숭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겨서도 안 되지만,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겨서도 안 된다. 사람에겐 영웅심리가 있다. 자기가 직접 영웅이 되고자 하기도 하지만, 어느 특정한 대상을 영웅의 자리에 앉혀놓고, 그를 영웅으로 숭배하며 대리만족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과 열심이 좀 부족해도 양자(아들)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한다(8:15). 그 생명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또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해야한다. 우리기독교의 참된 신앙생활은 바깥의 하나님을 높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자녀가 되어, 친히 하나님을 표현하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몸소 살아내야 한다(1:21).

 

종은 아주 모범적으로 율법을 지킬 수도 있고 주변사람들을 감동시킬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할 수도 있다. 심지어 뜨겁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하나님 나라의 유업이 없다. 왜냐하면 그에겐 하나님의 생명이 없고, 주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한 신자(信者)는 이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신자(信者)의 모습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즉 신자(神子)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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