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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2 (20:06:55)

 

신명기가 말하는 인류의 역사관

 

< 장창수 목사 · 총회선교사 >

 

“한국 교회는 복음의 모든 초점을 재림할 예수님에게 맞춰야”

 

신약 성경의 사복음서들은 신명기와 선지서들의 모든 예언들처럼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서 죽고 사흘 만에 부활했음을 기록한다.

 

사도행전은 그의 승천 후 성령 강림이 있었고(행2장) 그 결과 구원받은 성도들은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음도 증명한다. 돌 판이 아닌 마음의 판에 율법이 성령으로 새겨졌기 때문이다(고후3:3).

 

이처럼 신약성경의 기록이 증거하는 것처럼 신명기의 예언들은 역사상 문자적으로 모두 성취되었다(신30:5-9). 그런데 여기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신명기에서 예언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류나 민족 또는 나라의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신약 시대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은 만민에게 전해질 것이다(마 28:18-20). 복음 전파에 따라 이 세상의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은 이스라엘이 밟았던 전철에 따라 종교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비슷한 발전 단계를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후 언젠가 사명을 마친다면 인류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선민 이스라엘이 보인 발전 단계의 흐름과도 연결되며, 하나님의 구속사의 어느 특정 단계에 놓인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우상과 전제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단계(출애굽 이전 단계).

2) 복음 전파로 인해 서서히 출애굽 현상이 일어나는 단계(출애굽 단계).

3)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변화를 위한 내부 투쟁 단계(광야 삶 단계).

4) 가나안땅에서 지도력 부족으로 인한 혼란 단계(사사 시대).

5) 지도력 확립 후 복락의 땅으로 만들어 가는 단계(다윗 시대).

6) 전반적 성장과 발전 후 주변 나라들을 이끄는 단계(솔로몬 시대).

7) 창조주를 버리고 배금주의로 서서히 쇠퇴하는 단계(열왕 시대).

8) 외적의 침략에 의해 쉽게 망할 수 있는 단계(제국의 포로 시대).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 보기에 따라서 둘째와 셋째 단계를 지나 넷째 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보여진다. 여전히 무교, 불교 그리고 유교가 강하지만 기독교가 전반적으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의 지도력 부족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비난도 듣고 있다.

 

부분적으로 한국 사회는 5단계 또는 6단계에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 사회가 너무나 급속하게 발전한 결과 한국은 모든 면에서 세계 13위권 안에 들어가는 강국이 되었다. 이것은 기적 같은 사실이다. 곧 7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미국과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6단계나 마지막 7단계에 속한다. 이들은 이미 쇠퇴기에 들어섰는지도 모른다. 뉴질랜드 같은 기독교 나라의 국민은 이미 종교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이들 나라는 언젠가 8단계에 이르러 내부적으로 서서히 무너질 것이다.

 

이들 8단계의 도움을 받는다면 지상의 교회들은 자신의 민족이 구속사의 어느 단계에 속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에 힘씀으로 나라와 민족을 도울 수 있을까도 알 수 있다.

 

한국 교회는 성경의 순수한 말씀에 입각한 목회와 신앙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한국 기독교는 아직도 다른 종교들과 영적 투쟁을 계속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젠 삶으로 보여진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이들 종교와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인 다원화 시대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둔 가치관으로 살도록 성도들을 격려함으로써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윤리 면에서 훨씬 우월함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신4:6; 마5:16). 말로 하는 복음 전파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한국 교회가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에 힘써야 할 이유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의 목회자들은 사사 시대 일부 지파만을 위해 일한 사사들처럼 자신의 교회의 양적 성장만을 위해 진력한다. 예수님의 보편 교회를 위하기보다 지역 교회의 성장에만 진력하는 목회자들. 사사 시대의 사사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혼란한 사사기를 맞은 이스라엘처럼 한민족도 민족 복음화 후 영적 혼란에서 빠져 나올 줄 모르고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한국 교회가 복음의 모든 초점을 재림할 예수님에게 맞추는 것뿐이다. 구약 시대 사무엘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케 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므로 이스라엘을 하나님 나라로 세웠던 것처럼 말이다.

 

특정 민족의 장래는 민족 교회의 영적 생동감에 달린다. 이 생동감은 다가올 파국을 그 만큼 더 지연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가 바로 이웃 사랑의 실천이다. 따라서 교회나 성도들은 복음을 열심히 전해야 한다.

 

그러나 복음으로 이 세상에서 번영을 누리겠다는 헛된 희망은 버려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구속사를 전개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로 목적 자체가 될 수 없다. 더구나 신약 시대의 교회는 구약 교회와 달리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고 있다.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 신앙과 구원을 완성시킬 것이다. 그의 재림은 세계적 그리고 우주적 파멸을 가져올 것이며 그 후 하나님 나라가 완성(consummated)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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