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36 no image 사람이 타락한 지위에서 비참한 것이 무엇입니까?
rpress
4442 2002-05-03
김용주 목사/소식교회 제19문 문 : 사람이 타락한 지위에서 비참한 것이 무엇입니까? 답 : 모든 인류가 타락함을 인하여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고 또 그의 진노 와 저주 아래 있어서 생전에 모든 비참함과 사망과 영원한 벌을 받게 되었습 니다. 성경 :창5장제 사람이 타락한 결과 칼빈은 사람이 타락한 결과를 이야기 함에 있어서 “인간은 지금 선택의 자유 를 박탈 당한채 비참한 노예 신분으로 전락해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성령의 빛이 없으면 모든 것은 암흑이다”라고 함으로써 사람이 타락 한 결과로 오는 바 전적 무지와 전적 부패를 항상 짊어지고 있는 양으로 말하 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식은 율법의 첫째 돌판에 관해서 는 전적으로 무력하며, 둘째 돌판에 관해서는 결정적인 경우에 무력하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의 의지는 선 을 사모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인간에게는 전적인 무능까지 겹쳐져 있 고, 덧 씌워져 있음을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본성의 부패를 로마서 3장이 증언한다” 하였으며 “사람의 부패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은 오직 정 죄 받을 일 밖에 없다”고 간파하였습니다. 1.사람이 타락한 결과는 무엇보다도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 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1) 여기 창세기 5장 기록된 아담 자손의 계보를 읽을 때 우리의 주의를 끄 는 점은 이 시대에는 사람이 오래도 살았구나 하는 점입니다. 930세,912세,905세,910세,… 등등의 이런 나이는 우리의 처지에서는 상상 하기 어려운 장수입니다. 그리하여 이 점이 우리의 눈에 띄게 됩니다. 2)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 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복을 주신 데서부터 시작하여 인류의 역사 를 쭉 읽어오는 처지에서는 이와같은 기록은 오히려 “죽었더라” “죽었더 라” “죽었더라”는 묘사가 더욱 인상적인 기록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결국 사람은 죽는 것이다”는 어김없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 r 다. 이 앞부분에도 사람이 죽는 사실은 기록되었으나 그것은 사람이 그 이웃 을 죽인 일, 즉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경우였습니다(4장). 그러나 이렇게 창세기 5장에서는 “몇세를 향수하고 죽었다”고 말씀하고 또 그런 방식으로 기록해둠으로써 아담으로부터 대대로 그랬음을 보여줍니 다. 이렇게 아담자손의 계보가 계시로 기록되면서 단 몇줄에, 때로는 단 한줄에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특징과 그 일생을 축약해 두었습니다. 족보의 중요성에서 볼 때에 다음 족보가 나올 때까지 이 족보가 “성 삼위일 체이신 하나님의 자기 계시” 방식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친히 정하신 하나님의 의지가 충분히 반영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담에서 노아까지 그들의 일생을 축약하여서 기록하여 둠으로써 사람 이 결국은 죽는 것임을 못박아 놓았습니다. 2.이렇게 타락이후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는 인생에게 필연적으로 사망이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1) 이 죽음의 일은 조상대대로 겪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그 사실을 보고 듣는 우리로서는 죽음은 사람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초 목이 싹이 나고 무성했다가 시드는 것과 같이 인생도 낳았으니 죽을 때도 있 다는 식으로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때로는 젊었으므로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다가도 나이들고 늙어가면서 운 명론에 밀린 듯이 죽음을 인정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떻든 사람들은 부활을 도무지 믿지 못할 일로 여길 만큼 죽음을 자연스러 운 일로 여깁니다. 그러나 과연 사람의 죽음이 처음 창조의 본래 질서에 순응 하는 일이겠습니까? 2)우리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두 가지를 들어 반증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 5장을 앞의 2장 16,17절의 말씀과 연결시켜 보면 사람이 하 나 님의 명령을 어길 때,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신 바가 그대로 된 것이기 때문에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의 결과 입니다. 둘째는, 아담의 칠세손 에녹의 경우에는 죽음의 기록이 없습니다(5:2 1-24) 하나님의 진노가 사라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우에 죽음의 기록 이 없는 것은 죽음이 자연 질서의 과정이 아니요 하나님의 저주의 표현임을 말하여 줍니다. 3)이 기록은 겸하여 땅 위에는 이 외에도 저주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 다.5장 29절에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라멕이 노아를 낳고 한 말 입니다. 사람이 수고로이 일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신 결과라 하였습니 다.하나님께서 따로 안위의 방식을 주셔야 할 만큼 일 자체가 고역이 되었습 니다. 또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결과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과 그 분의 모본을 따라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특권이고 복이겠습니다(창세기1장,2장). 그렇지만 타락 그 이후에 수고로이 일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그 일과 그런 환경이란 저주입니다. 여자가 아이를 잉태하고 해산하는 일이, 그리고 가정생활 그 자체가 굉장 한 복일찌라도 또 한편으로는 잉태의 고통이 더해진 것과 자식을 해산하는 산 고와 남편을 사모하고 다스림 받는 그 일들과 그 과정이 하나님이 내리신 저 주의 결과로 여전히 있는 것이요(창3:16) 아담에게 주어진 환경과 그가 맡은 일 과 그가 필경 흙으로 돌아가는 형편이란 분명히 하나님의 저주의 결과 입니다 (창3:17-19). 특별히 하나님의 동산에서 내침을 당한 것이 바로 그런 것 입니다(창세기3:22-24). 3.범죄이후에 인생이 사는 땅 위에는 이 외에도 비참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 다 여러 가지 질병과 앉은뱅이, 소경, 벙어리 같은 불구, 지진, 가뭄, 홍수같은 천변지재, 전쟁이나 경제공황들의 비참이 땅 위에는 꼬리를 물고 옵니다. 이런 비참의 근원에 대하여는 창세기3장이 실마리를 보여 줍니다. 사람이 범죄하자 하나님께서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 낼 것을 말씀하셨습니 다. 이것을 시작으로 인생들이 거하는 땅 위에 비참한 일들이 내리기 시작했 습니다. 4.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그리고 생의 비참함 중의 가 장 큰 것은 지옥의 형벌입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죽어서나 좋은데로 가야 할텐데”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서 그것은 확실히 알 수 없는 일이라 막연한 불안을 가지기 도 합니다. 또한 그것은 미래의 일이라 아무도 경험으로 확신을 가지고 말하 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서 우리에게 확 실한 것을 가르 쳐 줍니다(마8:12-13,막9:47-48,마25:41). 지옥은 우리가 가 보지 못했고 아직은 미래의 일이지만 예수께서 또 성경에 서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그곳이 있음을 알리고 또 경고 하기까지 합니다. 5.이 모든 비참은 결국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끊긴데서 옵니다. 원래 사람이 하나님 가까이 있어 막힌 것이 없었을 때는 이러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무 한한 복이요 영광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타락함으로 이런 영광을 잃게 된 것은 생의 비참함 중의 비참 함 입니다. 그런데도 죄인은 그 죄악을 버리기 싫어서 오히려 하나님이 멀 리 계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시10:11). 그러기에 삶의 도처에 죄인들의 공허와 불안 등이 있습니다. 6.그러나 이 모든 비참에서 구출받은 성도는 하나님과의 친교를 구하게 됩 니다(시13:1). 인생의 특이성은 만물을 주관하는 것과 생각하는 존재 로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점 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교제함에 결함이 없도록 자기 형상대로 지으신 것 입니다 (창1:26-27). 이것이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점 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형상이란 외모 가 아니고 중심이며, 모형이 아니고 영적 교류라 하겠습니다. 영적 교류라 함은 그가 지닌 지식, 사랑, 성결 등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엡4:24,골3:10). 하나님과의 이같은 교제는 영적이고도 생명적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제가 끊어진 것은 가장 근본적이요, 큰 불행이라 하겠습니다(눅15장). 마치 나뭇가지가 원 줄기에서 끊긴 상황과 같습니 다. 성도란? “구별된 교제자” 입니다. 즉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생명의 교제가 회복된 자라 할 수 있습니 다 여기서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란, 성 삼위 일체이신 하나님 과의 교제와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것으로 부터 나오는 바 우리의 이웃과의 교 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차적인 우리의 이웃은 성도들 상호간 입니다. 그렇게 성경이 말씀 하는바 하나님의 사람이란 바로 이런 자들을 지칭하는 말 입니다.
35 no image 사람이 타락한 지위에서 죄 되는 것이 무엇 입니까?
rpress
5164 2002-03-28
김용주 목사/ 소식교회 제18문 문 : 사람이 타락한 지위에서 죄 되는 것이 무엇 입니까? 답 : 사람이 타락한 지위에서 죄 되는 것은 아담의 첫 범죄에 유죄한 것과 원시 의가 없는 것과 온 성품이 부패한 것인데 이것은 보통으로 원죄라 하는 것이요,아울러 이 죄로 말미암아 나오는 모든 죄입니다. 성경 : 마 12:31-37 참으로 사람의 본성은 망상적인 자기도취에 빠지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사실 상 사람의 본성중 남의 아첨을 받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없습니 다. 사람마다 자신이 조금 높이 평가되는 것을 알 때에 자기를 과신하는 경향 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범하는 치명적인 오류인데, 그것은 전혀 이상 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맹목적인 자기 사랑은 모든 인간의 천성입니 다. 자기들의 천성에는 가증하다고 여길 것이 없다는 말을 믿어버립니다. 따 라서 사람은 선하고 복된 생활을 할 풍부한 능력을 타고 났다는 허망한 견해 가 일반적으로 신뢰를 얻습니다. 1. 본문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본성에서 나온 악한 말을 꾸짖으시는 말씀 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된 자를 예수께서 고쳐주신 데서부터입 니다. 무리는 놀라고 칭송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 바알 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마 12:24)하였습니다. 1)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사단의 나라는 서로 대립한 통치기구인데, 이 강한 자 사단에 속한 귀신을 좇아낸 것은 그 강한 자를 결박한 증거이고 그를 힘입어 쫓아낸 것이 아님을 가르치시고, 이런 명백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을 고의로 훼방함은 죄의 극단이요 멸망에 가까움을 지적하셨습니다. 명 백하게 좋은 결과를 놓고 그 근원이 악하다고 함은 순전히 악의에서 나온 것 임을 지적하셨습니다(마 12:33). 2) 예수께서는 비판의 초점을 자신의 행동에서 적수의 행동으로 돌려 “너희 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34절) 하셨습니다. 그들이 악한 말을 한 것은 바로 그들이 악 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통찰력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참 의원이신 예수께서는 사람의 행동에서 그 근원을 진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일부 특수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된 것 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맞는 일반적인 원칙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선한 사 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하신 말씀이 그 뜻입니다(35절).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다 죄를 회개한 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의 선민 인 이스라엘을 향하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경고하신 분이십 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 모든 사람이 악하여 악한 말을 하는 것임을 뜻하 신 것입니다.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말씀하심은 악함의 강도 를 표시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가득한 것”이란 표현도 마음에 있는 악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예수께서 다른 경우에 또 한번 “마음에서 나오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습 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 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 게 하지 못하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마 15:19,20). 이 말씀 역시 악행도 악행이려니와 악행을 내놓은 사람의 상태가 타락하고 부 패하였음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본성을 이렇게 판단하셨습니다(마 23:25,28). 그러나 이 것은 사람들이 윤리를 논하면서 인간 본성의 성선설을 주장하심이 아니요, 또 한편으로는 성악설을 주장하는 것과도 다릅니다. 부패한 인간들이 세운 희 미한 표준하에서 말하는 성악설과는 그 성질이 다릅니다. 예수께서는 영원하신 신성을 가지신 성자 하나님답게 하나님의 표준에서 인간 의 본성에 대하여 정확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창 6:5,8:21;시 58:3). 2. 신,구약 성경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종들도 인생의 전적 부패에 대하여 말 하였습니다. 1)사람의 마음이 부패하여 죄 밖에 놓을 것이 없음을 사도들도 가르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 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라는 말씀 입니다(엡2: 1,롬3:10 ,12, 5:19). 2)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선지자들도 꼭 같으신 하나님의 뜻을 같은 방식으 로 가르쳤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 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 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는 말씀이 그런 뜻 입니다(렘17:9,10). “구스인인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할 수 없을진대 악 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라는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렘 13:23) 잠언1:24절 말씀도 인생의 부패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말씀 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은 사람이 죄를 행하는 사실과 부패한 죄인임을 강한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3. 원죄는 명확히 말하자면 부패한 상태만을 말하지 않고 이미 죄지은 자에 게 있는 유죄성, 곧 죄책을 포함 합니다. 1)사람은 스스로 더러워진 마음을 씻을 수 없음 같이, 이미 지닌 죄책에서 헤아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죽음에서 피할 수 없는 사실은 사람에게 죄 책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사람이 원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의 롭게 지어졌으 나 범죄 함으로 원래 타고난 의는 잃고 대신 죄책을 가지게 되었고 마음이 부 패 하여져 죄를 짓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리는 이 진단이 우리의 기분에는 좋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믿고 사노라면 우리의 체험이 또한 이를 입 증하여 줄 것 입니다. 2)세속에 속한 모든 사람은 자존심이 골수에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매혹적인 언사를 가장 기뻐 합니다. 어느 시대이든 사람들은 인간성을 가장 듣기 좋은 말로 찬양한 사람들의 말 을 경청하고 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를 만족하게 생각하도록 가르치는바 인간의 우수성에 대 한 이런 예찬이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그것은 자기 도취일 뿐 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듣는 사람마다 참된 자기 인식이 향상되지 못할 것 입니다. 도 리어 최악의 깊은 무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지식은 거기 에 찬성하는 사람들을 속여서 철저한 파멸로 몰아넣습니다. 3)이제 우리는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 다 첫째로, 자기가 창조되었으며 그때에 귀한 천품을 받은 것이 무슨 목적이 었는 가? 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지식에 힘입어서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내세 생명에 대하여 명상할 용기 를 얻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자기 재능과 그 재능의 결핍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 결핍을 알게 될 때에 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땅에 엎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전적 무(無)의 상태가 될 것입니다. 이 첫째 점을 고려하면 사람이 자기 의무의 성격을 인식하게 됩니다. 둘째 점에서는 그 의무를 실천하려는 바 자기 능력의 한도를 알게 됩니다. 이 런 사람들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간구하고 그분의 음성을 경청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34 no image 이 타락이 인류로 하여금 어떠한 지위에 이르게 하였습니까?
rpress
4402 2002-02-28
김용주 목사/ 소식교회 제17문 문 : 이 타락이 인류로 하여금 어떠한 지위에 이르게 하였습니까? 답 : 이 타락이 인류로 하여금 죄와 비참한 처지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성경 : 열왕기상 18:16-19 원죄와 인류의 비참한 처지 이 부분에서는 아담의 타락 이후에 불행하게 된 우리의 처지를 생각하게 됩니 다. 하나님의 택하신 바 된자들이 이 일을 참으로 알게될 때에 우리의 모든 자랑과 자만한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심으로 겸손하게 됩 니다. 아울러서 우리가 완전히 잃어버린 “선”을 각각 하나님안에서 회복하 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겠다는 새로운 열성의 불길이 일어나게 됩니다. 1. 오늘 살피는 성경 본문은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과 선지자 엘리야가 대 결하는 장면입니다. 아합이 엘이야를 보자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 냐?”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삼년 반 전에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나의 섬기는 이스라 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르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왕상17:1)고 말한 때문이었습니 다. 과연 이 말대로 그 땅에는 비가 오지 아니하여 이스라엘 경내에는 기근 이 극심하였습니다. 들에는 곡식이 없어 사람들이 고생이고, 또 꼴이 없어 가 축들도 키우기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과 은혜 베푸심 이 신,불신간에 모든 인생들의 삶의 근원이 됩니다. 하나님이 비를 주시지 않 으면 사람이 이렇게 살기 어렵습니다. 삼년 반의 가뭄은 모든 백성과 왕에게 까지 괴로움이었습니다. 아합은 피부에 와 닿는 괴로움으로 인하여 엘리야에 게 부르짖습니다. 아합 왕의 절규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였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을 찾아가 가뭄을 예고한 일에서 부터만 보고, 또 사태를 피상 적으로 보면 선지자 엘리야를 향한 아합의 손가락질이 옳겠습니다. 그렇지만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하여 우리는 역사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 다. 2.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다윗과 그의 후손이 영영히 다스리라’ 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습니다(삼 하7:11-16). 그런데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말년에 이방인 아내들로 말미암아 우상에게 끌 립니다. 그 죄로 인하여 아들 르호보암 대에 가서 북쪽 열지파가 다윗 왕가에 게 반역하여 따로 나라를 세웁니다. 그러므로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나뉘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여로 보암의 죄를 답습하여 벧엘과 단에서 송아지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던 중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왕이 되어서는 송아지 우상 숭배에다가 바알신을 섬기 는 죄를 더했습니다.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입니 다. 이스라엘의 악이 개선되거나 감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눈덩이처럼 부풀 려져 가며 굴러가는 듯합니다(16:25). 오므리는 악행을 법제화하여 시행하였 습니다(미6:16). 그리고 ‘아합은 그의 아비 오므리’보다 더 하였습니다 (16:30-34). 바로 이런 사연들이 있어서 엘리야는 바로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니이다”라고 말하였습니 다. 이 장면은 사 람이 재난을 당할 때 그 근본 원인을 찾아 죄를 발견하고 회 개하지를 않는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는 하지 않고 피부에 와 닿는 재난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종들을 욕하는 그야말로 악에다가 악을 더하는 한 표본이 되겠 습니다. 세상에는 기근과 지진과 전쟁과 질병과 여러 행태의 갈등과 도시의 뒷골목에 있는 여러 비참한 현실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할 수 없는 죽음 등 허다한 비참이 있는데 이 배후에는 항상 죄가 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에게는 불경건으로 시작된 모든 불의가 그곳에 만연해 있습니 다. 이것이 인류가 처하는 비참한 현실 입니다. 3. 사람이 타락한 이후에는 이렇게 죄와 비참에 처하게 되었고 거기서 헤어나 지 못합니다. 1) 사람은 타락한 책임을 느끼고 부끄러워하고 참으로 회개하기 보다는 비참 한 현실만을 아파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또 아파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 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면 왜 이런 비참한 일이 땅에 있게 하시느냐?” 또는 그 하 나님의 능력을 의심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신?데도 왜 이런 재앙이 땅에 있지 않게 못하신단 말이냐?”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평가 가 잘못된 것처럼 말합니다. 하나님의 징벌이 가혹하다고만 말합니다. 그 래서 대부분은 더 완고해지고 참으로 회개하지 않습니다. 2) 계시록 6장에는 재앙이 계속적으로 땅에 내리는 것이 기록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진노가 내 리는 것입니다. 8장, 9장에도 계속적인 재앙이 묘사되었 는데 이 재앙 속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 을 보면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 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계9:20, 21)고 묘사합니 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훼방하는 모습도 봅니다.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 들이 그 박재로 인 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계 16:21)”고 하였습니다. 4.사실을 바로 아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비참한 현실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 앞에 인생의 죄가 크다 는 것을 알고 인정해야 합니다. 불평과 훼방보다는 겸손과 회개의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과 하나 님의 모든 은혜를 회복하는 첩경입니다. 씨에스 루이스의 “고통에 관하여”란 책에 의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즐거움은 하나님의 속삭임이요, 양심은 그 분의 말씀이요, 고통은 그 분의 외침이외다. 고통이야 말로 귀먹은 세계를 깨우는 확성기외다” 라 는 말입니다. 인류가 죄와 비참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할 때마다 우리는 역사 의 시초로 거슬러 올 라가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타락의 원인을 파악함이 참 으로 지혜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며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가 항상 우리 자신을 반성하도록 요구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사도께서는 “심령으로 새롭게 되라”고 요구합니다(엡4:23). 또 같 은 방식으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권고 합니다. -묻는말- 1. 아합이 엘리야를 어떻게 평가하였습니까? 이같은 말은 무엇을 어떻게 보는데서 나오는 말입니까? 2. 이스라엘은 본래 어떤 백성들 입니까? 3. 이스라엘의 역대 죄상을 솔로몬에서 아합까지를 이야기해 보십시오. 4. 인류 역사상 비참함이나 고통이 없던 시대가 있었습니까? 5. 사람들이 비참한 현실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세상 끝에는 좀 나아지겠습니까? 6. 비참한 현실을 당할 때 무엇을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 지혜입니까? 또 어떻게 해야 옳습니까?
33 no image 모든 사람이 아담의 첫 범죄 중에 타락하였습니까? (110)
rpress
5903 2002-02-06
김용주 목사/ 소식교회 성경: 롬5장 제16문 : 모든 사람이 아담의 첫 범죄 중에 타락하였습니까? 답 : 아담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신 것은 저만 위하여 하신 것이 아니요, 그 후 자손까지 위하여 하신 것이므로, 그로부터 보통 생육법으로 출생하는 사람은 모두 그의 안에 있어서 그의 첫 범죄에 참여하여 그와 함께 타락하였 습니다. 원 죄(1) 항상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자기 택하신 자들 을 위하여 매우 고급한 지식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첫째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구속자로서의 성 삼위 일체이신 하나님 에 대한 지식입니다. 이 지식이 처음에는 율법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계시되 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복음으로 우리에게 계시되었습니다.  둘째로는 이렇게 성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자기 계시" 안에는 필연적 으로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인간에 대한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 다. 인간 에 대한 말씀으로는 먼저 피조된 원상태와 그 이후의 상태 가 나타나 있습니다. 아담의 타락과 배반으로 인류전체가 저주에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원상태 가 부패하였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되고 있는 바 원죄론의 핵심입니 다. 우리는 이 사실을 추적함에 있어서 처음 조상에게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원천 을 찾습니다. 아담은 시조였고 인간성의 뿌리였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가 부패한 때에 전  인류가 당연히 부패한 것으로 여깁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해서 이 점을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1. 롬5:1-11에는 믿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많은 은혜를 가 르칩니다. 그것은 의롭다 하심, 화목, 은혜에 가까이 나아감,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 망,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 즐거움 등의 내용들 입니다. 2.롬5:12-21의 말씀은 많은 사람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 는 은혜를 받게 되는 사실을 좀 더 알게 하고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증거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한 분” 또는 “한 사람” 이란 말과 “많은 사람”이란 말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1) 한 사람이 많은 사람, 혹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사실을 설명 할 때, 바울 사도는 그 반대의 과정, 곧 한 사람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 혹 은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사실을 들어 대조를 시킴으로 그 사실을 선명 하게 드러냅니다(12). 또한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한 분이신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의와 생명 이 회복된다는 사실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2) 이와 같은 글의 구조를 통해서 사도께서는 결국 첫 사람, 곧 인류의 시조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임을 가르칩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니라”(14절)는 말씀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 서 인류의 시조인 아담을 인류의 대표로 세우고 언약을 하신 것 같이, 새 인 류의 시조, 곧 둘째 사람(고전15:47)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새 인류의 대표 로 세워 그의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바 된 모든 사람, 곧 많 은 새 인류가 생명에 이르게 하셨습니다(18-19). 3) 이 대표의 원리를 드러내는 사실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12-14절에 기 록되었습니다. 첫째는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입니다(12). 모든 사람이 죽게 되는 것 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것은 예 수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사람, 곧 보통 생육법으로 출생하는 모든 사람은 시조 아담 안에서 그의 처음 범죄에 참여하여 그와 함께 범죄하였음을 말합니 다(15, 18, 19).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죽는데(고전15:22),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아담 안 에서 범죄 하였기 때문입니다. 4) 특별히 주의할 만한 또 하나의 사실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 한 사람들도 죽는다 는 사실입니다(14절). 아담은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 (창2:17)을 어겼습니다. 모세 이후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상에 명문화 한 율법을 내리셨 으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이런 율법이 없어서 그 때 산 사람들은 아담과 같 은 죄를 범하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은 아담의 범죄가 그들을 죄인되게 하였다 는 것이요, 또한 그들은 같은 정죄에 이르게 하였음을 보여줍니다(18, 19). 3. 이렇게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물려받은 부패 , 곧 원죄가 있게 되었습 니다. 첫째로, 죄인이 되어 죄의 책임, 곧 정죄의 형벌을 받습니다(19절). 이와 같은 원리가 구원에 적용될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은 의 의 공로로 믿는 자들이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이렇게 해서 죄와 죽음은 아 담을 통해서 잠입했으며, 그리스도에 의해서 없어진다는 결론이 따릅니다. 이 렇게 아담은 우리를 자기의 멸망에 끌어넣어 자기와 함께 멸망하게 만들었습 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은총으로 우리를 다시 구원해 주십니 다. 둘째로, 모든 사람이 아담과 함께 타락하여 창조 때의 의로움, 곧 하나님 을 참으로 아는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날 때부터 모든 면에서 도덕적 으로 부패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선을 행할 힘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 태에 우리가 떨어졌음을 말할 때에 이를 원죄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와 같은 원죄의 전염은 처음 사람이 자신 뿐 아니라, 동시에 후손을 위해서도 하 나님께서 부여하신 천상의 성품을 가지며, 또 잃어버리도록 성 삼위 일체이 신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입니다. 4.이와 같은 원죄에 대하여는 우 리에게 비추인 진리의 빛이 매우 밝습니 다.  여기서“원죄”라는 말은 이전의 선하고 순수했던 본성을 잃어버렸다는  뜻입니다. ① 이와 같은 원죄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② 또한 우리의 경험으로도 확증됩니다. 1)다윗을 통해서 주신 시편 말씀에 그 정황들이 밝혀져 있습니다.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 는도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시58:3). 또 다른 시편에는 “내가 죄악 중 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는 말씀도 있습 니다(시51:5). 이런 말씀의 뜻은, 내가 모친의 태에 잉태되었을 때 나는 벌써 죄가운데 있었 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다윗의 고백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기서 그는 자기부모의 죄를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인애를 더욱더 칭송하기 위해서 자기는 잉태된 때부터 악 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것은 다윗에게만 있는 일이 아 닙니다. 그는 삼위 일체이신 성령하나님을 의 지하여 인류의 공통된  처지를 대표한 것입니다.  2)하나님의 사람 욥께서도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까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욥14:4).  그러므로 불순한 씨의 후손인 우리는 날 때부터 죄에 전염되어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이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이미 하나 님 보시기에 더러워졌고 오점이 많았습니다.  3)또 바울 사도의 글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 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말씀(롬8:7)하 신 뜻도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에 대한 신자들의 믿음을 강화시켜려고 아담 안에서 잃어진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다는 점을 밝힙니다(고전15:22). 5.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가서 성 삼위 일체이신 하나님을 참으로 알현하게 되고 그 분의 엄위하심 앞에서 우리 자신을 참으로 알면 자 기 신뢰가 없어집니다. 그 좌소에서 자신의 전적 무지와 전적 부패며, 전적 무능을 보게 되는 것입니 다. 그리 고 이 때에 비로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 바로 그 분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바로 그 분에 의한 진 정한 회복을 바라게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 구속의 은혜입니다.
32 no image 타락하게 된 죄가 무엇입니까? (2)
rpress
4430 2002-01-23
죄란 하나님의 통치 어기는 것 김용주 목사/소식교회 제15문(2) 문 : 우리 시조가 창조 받은 지위에서 타락하게 된 죄가 무엇입니까? 답 : 우리 시조가 창조 받은 지위에서 타락하게 된 죄는 금하신 실과를 먹은 것입니다. 성경 : 야고보서 4:11-12(신명기 5장)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금하신 이유 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시고 사람이 살 만한 동산을 설치하시고 그것을 지키며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거기 먹기 좋은 과실나무가 많은 가운데 한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셨습 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된 인생을 향하신 최상의 복된 배려이시지 어 려운 조건을 두어서 거기 걸려 넘어지게 하시려는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또 뱀이 말한 것처럼 사람이 그것을 먹고 선악을 알게 되어 뛰어나게 되어 하나 님과 같이 될까 하는 시기심에서 그랬을 리도 없습니다. 사람이란 언제나 피조물일 뿐이요, 하나님은 영원히 창조주로 계십 니다. 그래 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영원토록 뛰어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결코 하나님처럼 될 수 있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 께 시기심이 있다고 하는 것은 심히 그릇된 사상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 님의 성품을 오해하고 자기 표준으로 하나님을 끌어내려서 거룩하신 하나님 을 판단하는 무지한 소행입니다. 선악과는 하나님의 배려 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그것 자체가 독특한 능력이 있어서 사람을 지혜 롭게 한다거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을 먹어서 지 혜롭게 되고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방식을 정하신 것도 아니 고 내신 것도 아니어서 세상에 있지 않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그 나무가 그 동산에 사람 가까이 있게 된 것도 여호와 하나님이 거기 두셔서 있게 된 것입 니다. 만일 뱀의 말이 맞는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람 가까이 두시지 않으 면 됐을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위를 차지하는 영적 통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약 4:11-12). 하나님 말씀 아래 자신과 함께 다른 사람을 놓고 보 는 이 방식이 옳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준행하는 자요, 입법자나 재판자가 아 니기 때문입니다. 친히 존재하심에서와 역사하심에서 나누이시지 않으시는 본질과 성품으로 다 스리는 분이 재판장이시라면, 그 사실 또한 사람에게는 무한한 복이 됩니다. 이렇게 공의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법을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곳에 는 자연히 의가 있고 참 자유와 평강과 희락이 있으며 그곳에는 참 생명이 깃 들일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당연히 인간의 도덕의 세계에서도 입법자이 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피조된 인생에게 과연 무리하지 않은 명령을 내 리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주권을 가지신 분답게 그 법령을 어기면 죽을 것 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물론 지키면 공의로우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의롭 다 하심을 얻을 것이요, 거기에 평강과 희락이 있을 것이고 본래 주시고자 하 신 은혜와 복으로써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참 생명이 따를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세계의 입법자 그러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신 금령은 매우 의미 있고 복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자기의 사람들을 향하신 공의 롭고 지혜롭고 은혜로운 금령이었습니다. 사람이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하나님의 선하신 통치를 받는 마당에 마땅히 감사하고 찬송하고 영 광스럽게 여겨 순종하여 나아갔어야 할 것입니다. 오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나라로 다스림을 받을 때 그들은 참으 로 영광스럽고 복된 처지를 시편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시 147:19,20). 첫 사람도 다른 식물계나 동물계에 없는 하나님의 특별한 통치에 대하여 이러 한 심정으로 항상 노래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중대성을 띤 말씀을 무시하고 어겼습니다. 단순히 과일 하 나 따 먹은 죄가 아니고 영원토록 스스로 존재하시고 역사하시는 거룩하신 입 법자와 통치자를 무시하고 그분의 의로우신 법을 어긴 것, 이것이 죄입니다.
31 no image 타락하게 된 죄가 무엇입니까?
rpress
4177 2002-01-09
김용주 목사/소식교회 제15문 문 : 우리 시조가 창조 받은 지위에서 타락하게 된 죄가 무엇입니까? 답 : 우리 시조가 창조 받은 지위에서 타락하게 된 죄는 금하신 실과를 먹은 것입니다. 성경 : 야고보서 4:11-12(신명기 5장) 주님만이 입법자와 재판자 성경 이해에 있어 우리 선진들에게와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가장 크고 확실하 며 또한 가장 좋은 관점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성경 전체가 ‘삼위일체 하나 님의 자기 계시’라는 관점입니다. 이런 관점은 지금까지 ‘언약’이나 ‘하 나님의 나라’라는 개념보다 더 큰 신론적인 체계입니다. 창 1:1 - 계 22:21 말씀까지를 ‘성삼위 일체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이해 될 때 여타한 다른 사상들이 걸러지고 교정되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만이 우 리에게 있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세계와 인생이며 인생의 죄의 문제를 논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바르게 이해 하는 터에서 인생의 근본 문제나 죄 문제가 살펴져야 합니다. 죄의 본질 알아야 의와 죄책과 사망이라고 하는 사람의 비참한 죄의 현실을 이야기할 때는 자연 히 근원을 찾아 시조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말하게 됩니다. 그러면 창세기 3장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시조가 여호와 하나님의 금하신 실 과를 따 먹은 일을 거론하게 됩니다. 이때 흔히 ‘과실 하나 따 먹은 것이 그 렇게 큰 죄인가?’ 하는 생각을 품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은연중 ‘하나님 은 사람보다 도량이 좁고 너무 엄격하시다’고 생각하게 되고 오해하기 쉽습 니다 또 그럴 수가 없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라도 ‘창세기의 이야기는 신화가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한 나라의 생성과정을 설명하게 될 때에 거의 단군신화와 같은 가설적인 이야기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과실을 따 먹은 이야기가 단순히 길가다가 남의 밭에 들어가서 과일 을 따먹은 일이라면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 서는 사람이 길가다가 배고파서 이웃의 것으로 요기하는 때와 같은 경우 그 사정을 이해하시고 거기 관계되는 법을 만드시는 배려까지 하셨습니다. 신명기 5장 이후 이스라엘이 마땅히 듣고 순종해야 할 기본법과 이어서 실정 법을 이야기 하실 때 자상한 배려를 하신 것입니다(신 23:24-25).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는 그 이웃에 대하여 이만한 너그러움이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법은 긍휼 드러내야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 3장의 금한 과실로 말미암은 죄를 하나님의 마음이 좁 은 소치로 돌리는 일은 속단이요, 매우 천박한 생각입니다. 이렇게 성삼위 일 체이신 하나님을 사람이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려서 이해할 때 큰 오류를 범하 는 것이고, 이와같은 방식에서 각종 그릇된 신학이 나오고 급기야는 우상주의 와 인본주의의 형식과 이단이 속출하는 것입니다. 특히 포괄적으로 우상주의란 하나님을 피조물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며 또한 피 조물을 하나님 수준으로 끌어올림의 방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 에 성경 이해를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게 될 때 이런 그릇되고 오염된 사상들을 정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같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문제는 좀더 신중히 생각해 야 할 것입니다.
30 no image 죄가 무엇입니까?(3)
rpress
4244 2001-12-20
지난호에 이어, 김용주 목사/소식교회 해야할 일을 안 하는 것도 죄 사람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혹은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 하여 들려오는 하나님의 계명을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 죄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는 큰 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도 인정치 않고 하나님의 법도 인정 치 않음은 죄의 개념이 매우 불분명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법이 없다면 죄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① 율법을 통해서만이 ② 성 령으로만이 회개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 의해서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자기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서만 됩니다. 죄의 개념 분명히 가져야 이로 보아 다윗의 죄의 인식을 매우 정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 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 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라고 하였습니 다(시 51:1,2). 다윗은 자 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전적으로 주의 자비로 용서 하시고 씻어 주시기를 구하였는데 그 큰 이유는 자기가 오직 하나님께만 범죄 하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 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라고 고백 하였습니다(4절). 다윗이 우리아와 그의 아내에게 범죄한 사실을 몰라서가 아 니요, 그것이 사람에게 범한 죄에 그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범한 죄임을 통 절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또 한 가지 지나치기 쉬운 것이 있습 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일 뿐 아니라 거기에 미치지 못하여 부족한 것 도 죄입니다. 그러니까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빠뜨리는 일도 죄가 됩니다. 마 25:31절 이하의 양과 염소의 비유를 읽을 때 놀라웁고 당황하게까지 하는 점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 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45절)는 말씀입니다. 일부러 반역하는 뜻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을지라도 태만하여 하나님 의 뜻을 즐겨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길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 고 믿음이 있는 곳에 반듯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선행이 있습니다. 그런 의 미에서 개혁자들은 ‘믿음의 토대 위에 율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신앙 이 없이는 율법을 들을 수조차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앙과 율법 은 동시에 선포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먼저 은혜가 임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이 필연적이었던 것처 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생활이 필연적입니다. 그래서 개혁 교회 신앙교육은 사도신경 해설 후에 십계명을 해석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29 no image 죄가 무엇입니까?(2)
rpress
4444 2001-12-06
김용주 목사(소식교회) 제14문 문 : 죄가 무엇입니까? 답 :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 어기는 것입니다. 성경 : 롬 7:7-25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과 죄의식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죄의 식이란, 사람에게 괴로운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히 번민하여 죽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안에 죄가 있으면, 죄의식이 있어야지 죄 를 짓고도 죄의식이 없다면, 그것은 더욱 두려운 일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죄 인중에도 뻔뻔스러운 죄인이 될 것입니다. 죄인이라면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 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서 건져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되고 그 리스도의 대속하신 은혜에 감사할 것입니다(롬 7:25,25).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감사하는 생활이 신앙 생활의 토대입니다. 율법은 죄의식 드러내 특히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리니 곧 율법이 탐 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7 절).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 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 이니라”(13절) 말씀도 그런 뜻입니다. 1) 보편적으로도 죄를 말하려면 법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표준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율법이 없다면 죄도 없을 것 입니다. 우리는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법이 없다면 범법 행위도 있을 수 없 고 감옥도 없을 것입니다. 죄를 이야기 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법을 인정해 야 하고 하나님이나 그의 법을 부인하고서 죄를 논한다는 것은 헛된 일일 뿐 입니다. 2) 사람은 원래 도덕적으로 의롭고 거룩하게 지어져서 자기의 본성으로 하나 님의 뜻을 알고 행동하였습니다. 인생이 죄를 지어 타락한 후에도 도덕성이 전혀 말살된 것은 아니어서 율법 의 일이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롬 2:14,15). 하나님의 사람들은 거의 모두 경건하고 의롭게 사는 규칙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율법의 해석에서 사용했고 모세법 전체를 십계명에 넣어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롬 2:18,19). 3)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들의 죄의식을 일깨워 하나님의 자비 하심 을 의지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습니다. 또한 하 나님의 자비하심을 얻어 새로운 마음을 얻은 자는 그 표준대로 살도록 하셨습 니다. 그리고 십계명은 시대의 실정에 맞춰 변경되는 실정법에서 훨씬 뛰어 나 어디서나 어느때나 사람이 알고 행해야 할 바 하나님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친히 목소리를 발하여 들려 주셨 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없이 하지 않는 한 그 법은 영원한 법이 다”는 생각이 개혁자들의 소신이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도덕법이 타락 한 사람의 마음속에 히미하게 비취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뚜렷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선포되었고 다른 나라 백성들도 이스라엘을 통하여 명백한 하나 님의 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표준 제시 4) 신약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뜻을 가르칠 때는 율법의 골격, 곧 십계명을 들어 가르칩니다. 로마서 13:8절 이하에도 사랑을 가르칠 때 십계명과 관련시켜 설명합니다. 또 디모데전서 1:9절 이하에 여러 죄인들을 열거할 때 십계명에 비춰서 저촉 되는 자들을 말했습니다. 5) 주께서도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 5:17)라고 하셔서 구약의 율법이 하나님의 뜻의 표현인을 인정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의 분명한 해설과 지키도록 하는 교훈에 힘쓰셨습 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혹은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 스도를 통하여 들려오는 하나님의 계명을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 죄를 깨닫 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는 큰 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도 인정치 않고 하나님의 법도 인정 치 않음은 죄의 개념이 매우 불분명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법이 없다면 죄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① 율법을 통해서만이 ② 성 령으로만이 회개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 의해서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자기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서만 됩니다. 1) 이로 보아 다윗의 죄의 인식을 매우 정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 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 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라고 하였습 니다(시 51:1,2).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전적으로 주의 자비로 용 서하시고 씻어 주시기를 구하였는데 그 큰 이유는 자기가 오직 하나님께만 범 죄하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 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 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4절). 다윗이 우리아와 그의 아내에게 범죄한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요, 그것이 사람에게 범한 죄에 그치 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범한 죄임을 통절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 또 한 가지 지나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2)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일 뿐 아니라 거기에 미치지 못하여 부족한 것도 죄입니다. 그러니까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빠뜨리는 일도 죄가 됩니 다. 마 25:31절 이하의 양과 염소의 비유를 읽을 때 놀라웁고 당황하게까지 하는 점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 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45절)는 말씀입니다. 일부 러 반역하는 뜻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을지라도 태만하여 하나님의 뜻 을 즐겨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는 곳에 반듯이 하 나님의 뜻을 행하는 선행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자들은 ‘믿음의 토 대 위에 율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신앙이 없이는 율법을 들을 수조차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앙과 율법은 동시에 선포되어야 한다’ 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먼저 은혜가 임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이 필연 적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생활이 필연적입니 다. 그래서 개혁교회 신앙교육은 사도신경 해설 후에 십계명을 해석하여 가르 치고 있습니다.
28 no image 죄가 무엇입니까?
rpress
4728 2001-11-22
김용주 목사 제14문 문 : 죄가 무엇입니까? 답 :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 어기는 것입니다. 성경 : 롬 1:18-32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먼저 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앞 절 16,17절에 서는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사람을 능력있게 구원한다고 말합니다. 그 의의 필요를 가르치려고 죄를 말합니다. 인생이 사실상 죄를 모르면 ‘하 나님의 의’를 절실히 갈망치 않습니다. 죄의 본질을 모르면 죄책도 모르고 죄의 결과인 사망의 실상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1. 여기서 말하는 바 경건치 않음이 무엇입니까? 1)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하나님을 적극적으 로 섬기지 않는 것이 현저하게 드러난 불경건입니다(21). 사람마다 이와같은 불경건을 통하여 미련함과 어리석음의 극치를 드러냅니다 (22-23). 그리고 또한 여기에 여러 불의한 일들이 뒤따라 옵니다. 연이어 나 오는 24, 26, 28절 말씀들은 거듭 거듭 불의한 일들이 불경건에 뒤따르기 마 련이라고 가르칩니다. 2) 불경건이란, 기본 양심마저도 저버린 인생들의 마음과 행위입니다. 사람 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친근히 말씀을 듣고 대화하며, 친교를 갖도록 거룩한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살아계셔 서 항상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수 있을 만큼 도덕적인 능력이 있 었습니다. 또한 그의 본성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이 런 위치에 있던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타락했습니다. 3) 그러니까 불경건이란, 우상을 섬기며 일생을 헛되이 사는 바 삶 그 자체입 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도 사람은 만물을 보거나 자기의 본성으로나 하나님 을 알고 알 때에는 그의 권세와 능력과 지혜와 자비하심이 크심을 인하여, 우 리의 창조주와 섭리의 주가 되심을 인하여 경배하고 섬겨야 마땅할텐데 오히 려 우상을 섬기고 헛된 데에 일생을 바칩니다. 이것이 불경건이요 죄입니다. 2. 이로 말미암아 드러난 구체적인 죄가 무엇입니까? 1) 거룩하신 하나님, 곧 입법자를 무시할 때 그가 내신 바 인간 상호간에 지 켜야 할 법도를 존 중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 사회에는 허다한 불의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인 간 사회뿐이겠습니까? 입법자이신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경히 여길 때 그 무리 들이 교회라는 이름을 가졌을지라도 꼭 같은 죄악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때문 에 천주교나 알미니안 경향의 교회들, 재세례파적인 교회들, 그리고 오순절 계통의 교회 안에 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로교회라는 이름을 가졌 을지라도 그런 경향으로 기울면 각종 불의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성경에는 현저한 죄의 목록들이 나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 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 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 5:19-21)고 한 후 일언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3) 이 죄들은 한마디로 말하여 ‘하나님께 대한 죄요 하나님의 법을 어김’입 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십계명을 여러 모양으로 어기는데서 그렇게 많 은 죄들이 나옵니다. 그리하여 요한일서 3:4은 죄를 말 하여 “죄를 짓는 자마 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고 하여 죄를 말할 때 법을 어기는 범법 으로 가르칩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하게 인애하심을 입은 존재들입니다. 그리스도 인이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을 입은 사람입니다. 또 그리스도 인은 성령 하나님의 권능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마 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법을 준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사 람이 즐거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죄를 면할 길이 없습니 다.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죄 를 면할 수 없습니다.
27 no image 우리 시조가 창조받은 본 지위에 그대로 있었습니까?(2)
rpress
3915 2001-11-08
김용주 목사 /소식교회 13문 문 : 우리 시조가 창조받은 본 지위에 그대로 있었습니까? 답 : 우리 시조가 자신의 의지의 자유에 따라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창조받은 본 지위에서 타락하였습니다. 범죄로 말미암아서 인생은 전적 무지와 타락과 부패와 무능의 길로 나아갔습 니다. 1) 인생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도리를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길에서 떠난 것 입니다. 뱀이 다가와서 여자를 꼬였고 여자는 남자를 꼬여서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말았습니다(3:1-7). 이와같이 뱀이 사람을 꾀어서 사람이 원래 서있 던 고귀하고 아름다운 무죄하던 자리에서 떨어지게 되었는데 뱀은 그들을 강 제하지 않았고, 단지 꾀었을 뿐입니다. 즉, 하나님이나 다른 어느 피조물도 그들을 억지로 범죄하도록 이끌지 않았습니다. 인생이 스스로 걸어가야 할 길 에서 스스로 범죄하였습니다. 2) 때문에 사람의 범죄 책임은 어디에 전가시킬 데가 없고, 스스로 책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담은 창조주 하 나님께와 아내, 그리고 나무에도 책임이 조금씩 있는 듯이 말하였으나, 부질없는 안간힘일 뿐이었습니다(3:8-12). 하와도 창조주와 뱀에 게 죄의 책임을 옮겨 보려고 했으나 헛된 일이었습니다(13). 뱀과 그 배후 세 력은 그들대로 인생을 유혹한 죄의 책임을 하나님 앞에서 지게했습니다(14- 15). 그러나 사람은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그 책임을 지고 살게 되었 습니다. 그래서 괴로움과 저주와 죽음을 벌로 받게 되었습니다(16-19). 3) 이같이 사람이 책임있는 존재였고, 스스로 하나님을 배반한 사실은 하나님 의 입으로 형벌의 선고를 받기 이전에 이미 실제 증명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3-7). 인생이 본래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였습니다(2:21-25). 그러나 스스로 하 나님을 배반한 후 그들이 하나님이 가까이 오심을 들었을 때, 두려움과 부끄 러움을 인하여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3:8-10). 이렇 게 자기들이 자기들의 뜻으로 죄를 범한 사실을 스스로 알았습니다. 그 결과 로 이제는 그 정당하고 고귀한 지위에 있지 못하고 거기서 떨어졌습니다. 4) 첫 사람 아담의 타락은 영원하신 삼위 일체 하나님의 작정에 속할지라도 가까운 원인으로서 아담 자신의 타락에 있습니다. 이렇게 첫 사람 아담은 의의 길에 끝까지 서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 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성 삼위 일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될 인생의 길을 마 련하셨습니다. 우리 시조의 범죄는 새로운 인류의 머리시요, 인생과 만물의 회복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시험과 순종하심에 비추어 보면 더욱 선명해집니 다. 1)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는 둘째 사람으로서 죄인을 구원하여 새 사람을 만 들기 위하여 가야할 길이 있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모두어서 히브리서 2:10절 에서는 “온전케 되심”이라는 말로 표시했습니다. 성육신이신 예수님께서 온 전케 되시기 위해서는 마귀의 시험을 다 이기시고 죄인을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순종하셔서 “하나님의 의”가 되셔야 했습니다. 주의 길은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강령, 재림 등의 수순이 있으십니다. 2) 그런데 이 길의 처음 관문으로 마귀에게 시험 받으셨습니다. 마가복음 4:1-11절과 누가복음 4:1,13-14절에 기록이 있습니다. 40 일간 주리신 상태에서 광야에서의 시험이셨습니다. 아담보다 더 열악한 환 경과 조건이셨으나 구주로서 홀로 책임을 지고 감당하셨습니다. 한 번이 아니 라 세 번의 간교한 시험을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적절히 물리치셨습니다. 이 렇게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 인생 의 길을 모본으로 가신 것입니다. 3) 그 후에도 모든 삶을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3:34)는 말씀으로써 주님의 뜻을 확고 히 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대속의 일을 온전히 이루시고 지상의 생을 마치셨습니다(요 19:30). 4) 그리하여 맨 끝에는 자기 백성의 첫 열매로서의 부활과 구주의 영광에 들 어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의 자녀라는 영광스럽고 복된 상태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26 no image 우리 시조가 창조받은 본 지위에 그대로 있었습니까?(1)
rpress
3937 2001-10-04
범죄하여 타락한 인생(1) 김용주 목사/ 소식교회 제13문 문 : 우리 시조가 창조받은 본 지위에 그대로 있었습니까? 답 : 우리 시조가 자신의 의지의 자유에 따라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창조받은 본 지위에서 타락하였습니다. 영원토록 살아계셔서 항상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존재하심을 삼위 일체 하나님으로 알리셨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경영을 창 조와 구속이라는 크신 일을 알리셨습니다. 그럴찌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본체 와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하신 일들을 다 헤아려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하 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스스로를 계시하실 때에만, 또 성령 하나님께서 깨닫 게 해 주실 때에만이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습 니다. 참으로 지으신 분의 지혜와 거룩하심 만큼이나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들은 귀 하고 아름다워서 창조주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이 되었습니다(1:3-25). 1.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 중에서도 인생을 고귀하고 아름 답게 창조하셨고, 또 지으신 만물 중에 영광스럽고 복된 존재로 우뚝 세우셨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복된 지위를 얻 은 것입니다(1:26-30). 이렇게 천지와 만물과 인생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 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안식이셨습니다(1:31-2:3). 이같이 천지와 만물 그리고 인생을 창조하셔서 에덴에 두심으로 하나님의 나 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을 순종함으 로 더욱 더 영광스럽고 복된 나라로 나아갈 것이었습니다(2:4-17). 이같이 사람은 창조받은 본 지위가 매우 고귀하고 건실하며 아름답기까지 하 였습니다. 2. 인생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지위를 얻었다 함은 무슨 뜻입니까? 1)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 거룩하신 뜻을 헤아려 알고 하나님의 권 세와 공의와 은혜를 정당하게 인정항 생명의 언약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하 는 점입니다(2:9, 15-17). 2) 또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섬기며 살 수 있는 거룩한 성품을 주셨습니다 (1:26-27, 2:9). 3) 인생의 기능은 매우 우수하여 하나님의 지으신 것들에 각각 이름을 주어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능력으로 땅을 정복하며 땅 위에서 하나님 의 대리자로서 만물을 다스리면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갈 위 치에 있었습니다. 4) 이같은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남자는 머리로서, 여자는 돕는 배필로서 함 께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언약의 조건 하에서 생명을 소망하며 모든 일을 수 행하여 나아갈 길을 앞에 높여 있었습니다(2:18-25). 3. 이같이 인생은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온전하신 주권 아래서 자기 의사로서 이 영광스런 길을 선택하여 나아갈 능력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사람이 창조함을 받았을 때에는 이같이 자유의지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다른 생물이나 짐승과 다른 점입니다. 가령 소에게 그 주인이 금령을 내렸는데 주 인의 명을 어겼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 소에게 책임이 있지 않고, 소를 잘못 관리한 주인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소에게는 선택의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 다. 이에 비하여 사람은 선택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금령을 명심하여 금하신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기로 굳게 작정하고 다른 나무의 실과 를 먹고 하나님을 순 종하며 일하여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25 no image 사람이 창조함을 받은 본 지위에 있을 때에....(2)
rpress
3965 2001-09-20
소요리문답 제12문(2) 강세형 목사(광양은송교회) 문 : 사람이 창조함을 받은 본 지위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저를 향하여 섭 리를 하시는 중에 무슨 특별한 작정을 하셨습니까? 답 :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완전히 순복하는 것을 조건으로 삼아 생명의 언약을 맺으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을 사망의 벌로써 금하셨습니다(창2:16-17, 호6:7, 갈3:12, 약2:10).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 중 인류에 있어서는 그로 하여금 그 지으심을 받 은 본 지위에 머물지 않고 그보다 더 향상된 지위에로 나아가게 하시는 것이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도 속에 창조 와 향상(섭리)이라는 두 단계가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당신 과 '함께 함'이라는 지고(至高)의 복을 주시는 것은 인류가 단순히 창조의 단 계에 머물러 있어서는 불가능함인 까닭이다. 왜냐하면 이 지고의 복은 하나님 께 대한 인류의 태도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 늘은, 사람의 창조의 단계와 향상의 단계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에 게 행하신 일들이 하나님의 당연한 권리(주권)에서 나온 것들인데 그 일들이 의롭고 또한 사람을 향하여 은혜로운 일들이라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그리 고 사람의 향상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행하신 그 특별한 행위는 명령 과 언약과 시험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영광스럽게 창조하시고,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주시고,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라고 하신 높은 지위를 그에게 주 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빚이 있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요 당신의 자 유로운 주권에 의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전혀 불의한 것이 없이 완전히 의로운 행동이고 그리고 그에게 생명과 먹을 것과 좋은 환경과, 동산을 다스리고 지킬 권세를 주신 것은 그를 향한 은혜로운 행동인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 볼 것 같으면 사람이 이렇게 창조함을 받은 본 지위에 있 을 그 때에 하나님께서 저를 향하여 섭리하시는 중에 무슨 특별한 행위를 하 셨는데 '하라', '하지 말라' 하 는 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이 명령은 주권적 명령이다. 즉 부당한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께 고유한 당연한 권리이며 그리 고 과도한 점도 없다. 그 명령이 주권적인 당연한 명령인 이유는 하나님의 것 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지으신 사람에 게 명하신 때문이요, 또한 동산을 지으신 그 동산의 주인으로서 명하신 것이 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명령은 은혜로운 점이 있다. 동산에 있는 나무의 실과를 마음대로 먹어라. 먹고살도록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그리고 명령의 둘째 부분은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리도록 교육시키고 훈련시키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선 이시기 때문에(막10:18) 자의(恣意)로 선악을 결정하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함 으로써 선을 택하라고 하시는 명령이다. '이것이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하 는 것을 알고 선이신 하나님께 스스로 순종하도록 큰 원칙을 내려주신 것이 다. 그러므로 이 또한 사람을 향하여 매우 은혜로운 일이다. 만일 하나님께 서 사람에게 선을 택하도록 하시지 않고 마음대로 하도록 하셨다면 사람에게 큰 손실이 되었을 텐데 선으로만 이끌어주시려고 이 런 명령을 내려주셨으니 이는 은혜로운 명령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순종해서 사는 것, 곧 하나님께 나아가서 선이신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것같이 인생에 게 고귀하고 행복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명 령, 하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해서 순종하는 데에 사람의 생명이 있는 것, 그 것이 영원토록 변치 않는 진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맨 처음 세우 시고서 순종하기를 요구하시는 이런 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이 명령의 목적 은 사람으로 하여금 순종을 배워서 절대로 실수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을 순종 하는 지위에 확고하게 설 수 있도록, 스스로 순종하도록, 고귀한 지위에로 향 상시키심인 것이다. *그런데 이 명령은 동시에 언약인 것이다. 어떤 조건을 제시하시고 그 조건에 따라 무엇을 약속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친히 고안하 신 것이기 때문에 주권적 언약이다. 사람의 지혜로 이런 언약을 고안할 수 없 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언약은 공의롭고 은혜로운 언약이다. 지으심을 받은 사 람으로서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약속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 속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할 것이다. 동시에 이 언약은 불의한 것이 하나도 없이 공의로운 언약이다. 이는 약조다. 이 언약은 어떤 조건하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그 조건이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지켜 사람이 하나님께 완전히 순복 함으로 하나님과 사귐인 것이다. *동시에 이 명령은 시험이다. 넘어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증명하고 인정하기 위해서이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통과한 후에 칭찬과 복을 약속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도 시험을 통과하신 후에 부활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인정의 징표 인 것이다. 시험은 인정하고 확증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24 no image 사람이 창조함을 받은 본 지위에 있을 때에....(1)
rpress
4182 2001-08-16
소요리문답 제12문(1) 강세형 목사(광양은송교회) 문 : 사람이 창조함을 받은 본 지위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저를 향하여 섭 리를 하시는 중에 무슨 특별한 작정을 하셨습니까? 답 :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완전히 순복하는 것을 조건으로 삼아 생명의 언약을 맺으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을 사망의 벌로써 금하셨습니다(창2:16-17, 호6:7, 갈3:12, 약2:10).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창조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창조하신 것에 대해 서 섭리를 하심으로써 비로소 완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선 알아야 하겠 다. 이는 이성적 존재, 자기의사 결정적 존재의 완성을 위하여 섭리가 필요하 기 때문이다. 자기의사 결정적 존재는 타의에 의해서가 아닌 자기 의사로써 하나님께 대한 태도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의사를 결정하기 전에 이미 창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래서 그러한 피조물의 경 우 창조와 섭리로 나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 8문답에서 하나님께서 그 작 정을 이루시는 것은 창조와 섭리하시는 일로 하신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 경 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자기의사 결정적 피조물 중에서도 성경이 중점적으로 취급하는 피조물은 사 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이러한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께 대한 자기의 태 도를 결정하도록 하셔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제 12문답이 다루게 되는 내용이 다. *하나님께서 그 창조하신 것에 대해서 원래 가지셨던 목적대로 그것에게 행하 시는 일이 다름 아닌 바로 섭리이니까 본 문답에서, 당신께 대한 태도를 결정 하도록 하시는 행위를 일컬어, 섭리하시는 중에 하신 행위라고 일컫게 된 것 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사들에 대해서는 자기 의사를 결정하도록 하신 것 이 그것들에 대한 섭리의 완성이 되겠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섭리의 시작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구속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 속하기로 작정하지 아니하셨다면 오직 한 사람만 짓지 아니하시고 천사처럼 여러 사람을 지으셨을 것이다. 그래야 시험을 통과하고 바른 결정을 내릴 여 러 사람을 얻으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인류를 한 혈통으로 지으사 구속의 은혜를 베풀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에 처음 에 오직 한 사람을 지으신 것이고 그래서 이는 섭리의 끝이 아니라 구속섭리 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을 그저 섭리라고 하지 않고 섭리하시는 중에 하신 일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섭리 중에서는 작정에 속한 일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일이 그 사람이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하기로 작정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유의 작정을 언약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를 향하여 섭리하시는 중에 무슨 행동을 하셨느냐 하 면, 특별한 작정을 하신 것이요 그 작정은 다름 아닌 언약인 것이다. 무슨 언 약을 맺으셨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완전히 순복하는 것을 조 건으로 삼아 생명의 언약을 맺으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을 사망의 벌로써 금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지으신 사람이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상관없다는 식으로,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명하신 것 이 아니요, 적극적으로 생명의 언약을 맺으시고 금하 실 것을 적극적으로 금하 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 사람이 자기 의사로써 결정할 문제였 다. 다만 그 결정에 따른 결과는 확실한 것이었다. 그래야 하나님의 거룩하심 이 보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언약은 행위언약인 것이다. *행위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자기 결정적 존재와 맺으시는 언약인데, 자기 결 정적 존재란 언약의 당사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태도를 자기가 결정하 고 따라서 그 결과도 자기가 책임지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 완전히 순복함이란 무엇이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둘이 서로 별개인가? 아니다. 이는 한 가지 다. 하나님께 완전히 순복함과 인간이 선을 추구함이 서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사람은, 그러하신 하나님의 형상 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이 그 본성을 따라 선을 추구함 은 하나님께 완전히 순복함과 하등의 갈등을 초래할 일이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그 본질상 선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선악에 대해서 하나님의 지도와 인도하심을 받으 면 되는 것이고, 또한 그래야만 되 는 것이지, 스스로 선악을 결정하면 안 된다. 즉 자의적(恣意的)으로 선악을 알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면 안 된다는 말이다. 만일 그렇게 하면 선(善) 을 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선하신 이는 하나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이다(막10:18). 그러므로 선을 추구하려면 선하신 하나님 께 맞추어나가야지 자의적 결정은 선을 추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 자의성 자체가 선하지 못한 것이다. 인류의 선이란 선하신 하나님의 반영 에 불과하므로 스스로는 선할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을 따를 때만 선할 수 있 는 것이기 때문이다.
23 no image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4)
rpress
4080 2001-07-26
강세형 목사(광양은송 교회) 문 :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은 지극히 거룩함과1) 지혜와2) 권능으로써3) 모 든 창조물과 그 모든 행동을4) 보존하시며5) 처리하시는6) 일입니다. 1) 시 145:17, 히 1:3, 시 130:8, 시 36:6, 2) 시 104:24, 사 28:29, 3) 행 4:27-28 4) 창 50:20, 시 36:6, 잠 16:33, 마 10:29-31, 롬 8:28, 5) 느 9:6, 히 1:3, 시 36:6, 6) 시 103:19, 마 10:29-31, 엡 1:19-22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하나님의 섭리 중 구원섭리의 특성을 살펴볼 것이 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특성을, 한마디로 기적이라고 하였 다. 그런데 그 기적이라는 것을 자연법칙을 뛰어넘는 기적과 도덕적인 법칙 을 뛰어넘는 기적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면서 자연법칙을 뛰어넘는 기적은 도덕 적인 법칙을 뛰어넘는 기적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법칙을 뛰어넘는 기적은, 일반적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 라의 양상(본질)에 대한 표적으로서 주어 진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표적으로서 주어진 기적을 지상에서의 일상적인 현상으로서의 기적으 로 오해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분한 계시로서 하나님께서 계시사적으로 베푸 신 기적을 일상적인 것으로 추구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기적이 일상적으로 주어질 수 없는 현실을 인하여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하나 님 나라의 표적으로서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믿지 못 하고, 그에게 그리스도로서의 일상적인 기적을, 곧 자기네들이 생각하는 바, 표적을 보일 것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했으며 그 결과로 불신앙에 떨어지고 말 았던 것이다. 일상적으로 기적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뜻하신 바가 아니므로 결국 그리스도를 배척했던 유대인들의 경우와 같이 불신앙과 불경건의 태도가 되고 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기적에 관한 하나님의 뜻 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도덕적인 법칙을 뛰어넘는 기적을 생 각해 볼 것 이다. 이것이 중요함은 하나님 나라의 모든 기적 곧 자연법칙을 뛰어넘는 모 든 기적은 여기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적은 자연법 칙을 뛰어넘는 기적과 달리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자들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또한 이는 하나님 나라의 양상이요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 본질을 잘 알기 위하여서 복습을 간략히 해 볼 필요가 있는데 소요리문답 제11문 두 번째 해설에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마땅한 심판과 하나님의 오 래 참으시는 가운데 있는 구원을 알리는 것이 섭리의 대 원칙이라고 하였고 그러한 섭리의 대 원칙에 따라 전개되는 심판과 구원의 역사가 섭리의 전과정 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이 다한 후 오게 되는 하나님의 안식의 궁극 적 성취가 섭리의 마지막 결과라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기 위해서 홍수계시가 먼저 있었고 그 후에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가운데 구원의 역사가 진행되어 온 것이다. 죄인을 오래 참으시는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 궁극 적인 목적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자 해서 오래 참으시는 것이다. 하 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없이는 과연 아무도 이 세상에서 구원을 얻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오늘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속한 한가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서 오래 참으시는 가운데 기적을 사용하신다는 점을 배우려고 한다. 하 나님의 구원섭리의 특성은 한마디로 기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일반섭리만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적 이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타내는 새롭고 아주 놀라운 특별한 행위를 일 컫는다. 하나님께서 통상적으로 하시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타내시기 위해서 전에 하지 않던 일을 새롭게 또 놀라운 방법으로 특별히 행하시는 것이 곧 기적이다. 원래 하나님은 이 세상이 질서 있게 규칙적으로 운행되어 가도록 일정한 법칙을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계에는 도덕적인 법칙을 주셔서 우리가 그것에 의해서 살아가도 록 하셨다. 창세 이래 이 도덕적인 법칙은 하나님이 세우신 법칙이기 때문에 엄연히 살아 있어서 그대로 되는 것이고 아무도 그것을 변경시킬 수 없다. 아 무도 이 세상 사람으로서 그것을 극복하고 그것을 무시하고 그것을 철폐하고 살 사람이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적이 없이는 구원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 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그리 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기적이다. 그 기적을 반영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에서 여러 번, 여러 번 기적(자연법칙을 뛰어넘는 기적)을 행사하셨던 것이다. 기적을 행사하셔서 과 연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하여 내어주신 그 놀라운 사랑을 증명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표적으로서의 그러한 기적을 우리가 성경에서 읽을 때 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과연 우리에게 얼마나 확실 하며 놀라운 것인가를 생각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의 기적 과 구원(경건)의 능력을 생각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기적이요, 확실한 증거인 것이다. 이 기적이 지금도 우리에게 역사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용서와 죄로부터의 자유 를 선사하고 있다. 성령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부터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구 원하시는 기적을 행사하고 계신다. 이러한 사랑으로써, 기적으로써,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할렐루야!
22 no image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3)
rpress
4109 2001-07-12
강세형 목사(광양은송교회) 소요리문답 제11문(3) 문 :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은 지극히 거룩함과1) 지혜와2) 권능으로써3) 모 든 창조물과 그 모든 행동을4) 보존하시며5) 처리하시는6) 일입니다. ~~~~~~~~~~~~~~~~~~~~~~~~~ 1) 시 145:17, 히 1:3, 시 130:8, 시 36:6, 2) 시 104:24, 사 28:29, 3) 행 4:27-28 4) 창 50:20, 시 36:6, 잠 16:33, 마 10:29-31, 롬 8:28, 5) 느 9:6, 히 1:3, 시 36:6, 6) 시 103:19, 마 10:29-31, 엡 1:19-22 ----------------------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특성은 한마디로 기적이라 할 수 있다. : 하나님의 구원 은 일반섭리만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일 반섭리의 법칙 외에 기적적인 사랑과 은혜의 섭리를 더하신 것이다. 이 더하 신 섭리를 특별섭리라 한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일반섭리에다가 특별섭리 를 더한 것이다. 하나님의 특별섭리는 기존의 자연법칙과 도덕적인 법칙(죄 의 삯은 사망)을 뛰어넘는 새로 운 법칙이고 기적적인 법칙이다. *자연법칙을 뛰어넘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의 모든 기적은 하나님의 사랑의 기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하나님의 특별섭리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런 데 자연법칙을 뛰어넘는 이 기적의 법칙은 구원의 하나님 나라의 양상을 이 세상에 필요한 만큼만 표적의 의미로 침투시킴이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 실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계시와 하나님 나라의 표적을 위하여서만 이 세상에 서 그것을 사용하시므로 그 목적에 부합되게 하기 위하여 기적을 남발하시지 않고 절약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이러하신 뜻을 따라 기적을 대하여 야 한다. 우리는 기적을 하나님의 절약하시는 뜻을 따라 그만큼의 의미와 하 나님의 의도대로만 사용할 것이요, 그 이상으로 기적을 일상화 하려하거나 더 크고 일상적인 표적으로서 기적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악하고 음란한 세 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 그것에 한정한 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그것을 따라 믿어야 되고 그것을 따라 순종해 야 한다. 그 이상의 기적을 구하면서 더 큰 기적이 없으므로 순 종하지 않았 던 유대인들처럼, 계속 기적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불신앙과 불경건의 태도 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하나님이 주신 믿을 만한 증거를 등한 시함으로 지옥에 가서 나사로를 환생시켜 형제들에게 보내는 기적이 일어난다 면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므로 여기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을 것이라 고 그러한 기적을 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아브라함은 그 부자의 요청을 거절하 면서 땅에는 모세와 선지자들(구약성경의 증거)이 있으니 믿으려면 그들의 말 을 들으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상의 증거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 님이 주신 증거의 맥시멈이다. 그것을 보고도 못 믿는다면 그는 믿을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말하기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 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 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2-24) 고 한 것이다.
21 no image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2)
rpress
4004 2001-06-28
강세형 목사(광양은송교회) 소요리문답 제11문(2) 문 :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은 지극히 거룩함과1) 지혜와2) 권능으로써3) 모 든 창조물과 그 모든 행동을4) 보존하시며5) 처리하시는6) 일입니다. 1) 시 145:17, 히 1:3, 시 130:8, 시 36:6, 2) 시 104:24, 사 28:29, 3) 행 4:27-28 4) 창 50:20, 시 36:6, 잠 16:33, 마 10:29-31, 롬 8:28, 5) 느 9:6, 히 1:3, 시 36:6, 6) 시 103:19, 마 10:29-31, 엡 1:19-22 하나님께서는 우연스럽게 보이는 작은 일들까지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작용하 게 하실 때 그 일들의 작정에 있어서 자기 자신 이외의 그 누구에게나 그 무 엇에도 구애됨이 없이 전혀 자유로운, 그리고 동요 없는 작정을 이미 하신 바 이다. 그는 다른 피조물들이 저지르는 일들을 뒤처리하기에 급급하신 분이 아 니라 그의 자유로운 의지와 권능으로써 작정하고 또한 섭리하신다. 그러나 그 는 죄의 조성자가 아니시다. 죄를 짓는 자는 그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짓는 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 허용하지 아니하셨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 고자 하신 것이라고 하였다(롬9:22a). 하나님께서는 그 타락한 피조물의 한 일, 즉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고 그것을 심판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 하시고 자기가 무엇을 기뻐하는지를 보이신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 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다고 하였고(고전10:11),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다고 하였다(벧후2:6b). 이는 하 나님께서 그 심판의 역사를 통하여 당신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곧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심을 보이신 것이다. 홍수 계시는 하나님의 이러한 성 품과 섭리의 원칙을 두드러지게 반영한다. 하나님의 계시의 차서 상 홍수 계 시가 먼저 온 것이다. 그러나 홍수 후에, 노아와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어서 타락한 인생도 보존하시고 통치하신다 하는 커다란 또 하나의 섭리의 원칙을 알 수 있다. 죄를 결코 묵과하지 아니하시고 마침내 심판을 하시지만 역사가 진행되는 동 안에는 노아 때의 심판과 같은 심판은 하지 아니하신다(창 8:20-22). 참으신다. 그런 기간에 구원의 뜻을 세우시고 그것을 위해 일을 하 고자 하심이다. 이처럼 노아 언약 때부터 이루어진 섭리의 역사는 아브라함에 게 하신 약속과 관련시켜서 읽어야 한다. 시날 평지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인 종은 퍼져나갔으며 마침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 지라---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 것이다. 아 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은 아브라함이 우리 혈통의 직계조상이 아닌 저 중동의 조그만 나라의 옛날 사람이지만 온 세상에 중대한 관련이 있고 중요한 위치 를 차지하는 그런 사람이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태어나시는 것이 아 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것으로 바로 알고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를 찬양하였다(눅1:68이하). 결국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하 신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겠다는 말씀이 포함되 어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복을 얻도 록 하나님이 뜻하시고 그것을 이루어 가시려는 것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는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 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라는 말씀을 하셨다. 창세기 12장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해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노아에게 하신 언약에 의해서 그 후의 모든 섭리가 이루어지는데 그것이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이루어지는 큰 구원을 목적하고 하나님께서 그런 섭리를 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이 모든 족속에게 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오 래 참으시는 것이다. 이 성격의 섭리를 해 가시는 것이다. 그런 한편 경고도 잊지 않으신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 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 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 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 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 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6-9). 참으시는 목적이 거기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땅한 심판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가운데 있는 구원,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원칙이며 그러한 원칙 에 의하여 전개되는 구원의 역사가 섭리의 과정이고, 그리고 그 결과로 오는 하나님의 안식의 약속의 필연적 성취---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궁극적 결과 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겸손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만일 우리를 그 본성대로 버려 두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겠는 가를 생각함으로써--) 세상을 향하여 심판의 두려움으로 경고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따라 온유함으로 권하며 약속의 소망으로 인내해야 할 것이다.
20 no image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1)
rpress
4517 2001-06-08
강세형 목사 (광양은송교회) 소요리문답 제11문(1) 문 :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은 지극히 거룩함과1) 지혜와2) 권능으로써3) 모 든 창조물과 그 모든 행동을4) 보존하시며5) 처리하시는6) 일입니다. 1) 시 145:17, 히 1:3, 시 130:8, 시6:6, 2) 시 104:24, 사 28:29, 3) 행 4:27-28 4) 창 50:20, 시36:6, 잠 16:33,마 10:29-31, 롬 8:28, 5) 느 9:6, 히 1:3, 시 36:6, 6) 시 103:19, 마10:29-31, 엡 1:19-22 ................................................... 우리는 이미 제4문답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배웠다. 그는 신이시요, 그 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이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불변하실 뿐 아니라 그 의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또한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불 변하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그의 속성대로 하시는 일인데 이 러한 하나님의 속성상 불변의 완전한 계획을 세우시는 것은 당연하며 그 계 획, 그의 작정 이 의롭고 정당한 것도 당연하다. 또한 그 완전하며 정당한 작 정을 이루시려고 그에 따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것도 당연하다. 오늘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 중 그 섭리하시는 일이 어떠한지를 배울 것인데 하나님의 섭리란 그 창조하신 만물에 대하여, 그 창조의 목적을 위하여 그것 을 보존도 하시고 또한 다스리기도 하시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 나님의 섭리에 대해서는 그 섭리의 양상, 섭리의 원칙과 과정과 궁극적 결과,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제11문은 하나님께서는 그 창조하신 만물에 대하여 어떻게 섭리하시는 가를 묻는 것이다. 거기에 대하여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은 지극히 거룩함과 지 혜와 권능으로써 모든 창조물과 그 모든 행동을 보존하시며 처리하시는 일입 니다"고 대답한다. 이 대답은 섭리의 양상에 대한 정교한 진술이다. 하나님 의 섭리의 큰 사실에 대하여 그것을 단면적(斷面的)으로 살펴볼 때 이 진술 은 그 정확한 양상을 표현한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대한 우리의 신앙 고백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그의 존재를 잘 알 지 못할 때는 일상적으로 일어 나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전혀 잘못되거나 희미한 생각밖에 가지지 못한 다. 그래서 우연이라든가, 운(運)이라든가, '맹목적 결정(決定)'이라든 가, '막연한 천명(天命)' 정도로 생각하고 비록 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기 뻐하시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의 양상에 대하여 우선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창 조물과 그 모든 행동'을 보존도 하시며 처리도 하신다 는 사실이다. 그렇 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정확히 하시는 것이다. 우선 보존하시는 일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창조물을 보존하실 뿐 아니라 그 모든 행동을 보존하시는데 여기 보존하신다는 것은 옹호하신다 는 의미와 전혀 다른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만물의 행동을 억압하시거나 어떤 행동을 그 의사에 반하여 강제하신다면 그는 만물을 창조하지 말았어야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만드신 만물의 본성을 '존중'하사(그것이 그 만드 신 그대로의 본성이든지 타락한 본성이든지 간에) 그가 무엇을 행하든지 그 자유를 보장하시며 그로 그것을 제 삼자 의 간섭 없이 자기 의사로 행할 수 있 도록 보장하신다. 다만 그것을 절대로 간과하지 아니하시고 그 행위대로 보응 하신다. 즉 처리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그 본성을 따라 자의적으로 무슨 행동이든지 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도 통제하실 수 없으리 만큼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일 그것들이 언제 무슨 행동을 할지 하나님도 알 수 없는 일이라면 우주는 혼돈에 빠질 것이며 하나 님께서 영원하고 확고부동한 계획을 세우거나 무엇을 장담하는 일은 애초부 터 성립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세계를 만드실 수는 있어도 통치하실 수는 없을 것이고 따라서 그는 만드는 것과 심판하여 파괴하는 것 의 행동을 무의미하게 반복하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낙관적으로 생각해봐야) 세계는 어찌 될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며 그야말로 우연이 지배하는 혼돈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아무런 전망도 세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신자들마저도 큰 틀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통치 를 믿지만 일상적으로는 이와 비슷한 생각 속에서 반응하고 행동하는 현 실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러나 작은 일을 지배하지 못한다면 큰 일도 지배할 수 없 는 것이다. "어떤 대 부대가 한 사람의 장군이 없는 바람에 전멸 당하고 말았 다. 그 장군이 올 수 없었던 이유는 이러했다. 말은 있었지만 그 말발굽에 신 겨야 할 굽 쇠의 못 하나가 잘못되어 신기지 못했다. 결국 그 장군은 그 작은 하나의 못 때문에 올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잘 알 려진 실제적 이야기라고 한다(G. I. 윌리암슨, 소요리문답, 최덕성 옮김). 또 하나의 예로 우리는 창세기 요셉의 이야기에서 때마침 이스마엘 상고들이 형들과 요셉 곁을 지나가게 된 것과 그 결말을 잘 알고 있다. 이처럼 복을 위 한 일이든 화를 위한 일이든 하나님께서는 우연한 일로 보이는 작은 일 하나 하나까지 다 주관하신다. 우연스럽게 보이는 작은 일들까지 일정한 목적을 위 하여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목적을 이룰만한 지식에서 나온 것인 데 이를 가리켜 지혜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거룩함과 지혜와 권능으 로써 모든 창조물과 그 행동을 보존하시며 처리하시는 것이다.
19 no image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5) (1)
rpress
4162 2001-05-25
강세영 목사 (광양은송교회) 소요리문답 제10문(5) 문 :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답 : 하나님이 사람을 남녀로 지으시되(창2:24, 말2:15, 마19:4-6), 자기의 형상대로(창1:27) 지식과(골3:10) 공의와 거룩함이(엡4:24) 있게 지으사 모 든 생물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창1:28). 사람의 만물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원래 인류에게 부여하신 만물 에 대한 지위는 어떠한가? 창 1장 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더러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셨고 시편 8편 6절에는 만물을 사람의 발아래 두셨다고 하였 다. 이는 사람을 만물 위에 왕으로서의 자유와 특권을 누리도록 하신 것이 다. 또한 하나님을 대리한 왕으로서 그것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다스리도 록 임무를 부여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은 사회적으로, 그리고 자연환경 에 있어서 많은 제약과 희생의 대상물로 전락하였다. 사회적으로는 권위주의 시대나 그 연장선상에서, 또는 민주주의 시대라 할지라도 사람이 사람 을 해치 는 고통을 당해왔다. 거시적으로나 미시적으로 사람은 분요한 싸움의 와중에 있어왔고 사회적인 고통과 맞물려 자연과도 투쟁하여왔다. 예를 들면 미생물과의 싸움을 생각하여 볼 때 전에는 세균과 싸워왔으나 지금 은 세균뿐 아니라 바이러스와도 싸우고 있다. 한가지 바이러스를 정복하면 또 다른 유의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사람을 위협하곤 한다. 또는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생태계가 파괴되어 여러 가지 환경의 위협에 직면하기도 한다. 또 사고로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한다. 또 지진이나 기상이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지만, 한편으로 그리스도의 시대 안에서 또는 일반은총으로 정복해나가고 있는 측면도 있지 만 한편으로 많은 희생이 따르는 것도 현실이다. 이처럼 사람이 그 피조된 원 래의, 영광스럽고 자유로운 대리 왕, 곧 만물을 다스리는 자의 지위에서 만물 에게 희생되는 종의 지위로 전락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그 대리 왕의 지위 에서 떠나 스스로 왕이 되려 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의로우시고 거룩하시며 전지전능하신 왕(하나님)의 멍에를 메지 않고 스스로 왕이 되었으므로 인류사 회나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의롭고 복된 통치가 사람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구 현되는 길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은 스스로 만든 사회환경이나 잘못 취 급하여 파괴된 자연환경 때문에, 또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벌주심으로 사회적 인 또는 자연환경의 희생물이 되어 온 것이다. 그러면 이를 극복할 길은 무엇인가? 사람이 상실한 그 영광스런 왕의 지위를 회복할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아니라 고마우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께 대한 반역을 고치면 된다. 시2편이나 마태복음 11장 28절부터 30절을 보 면 '멍에'라는 말이나 이와 같은 뜻을 가진 말이 나타난다. 군왕들이 나서며 세상의 관원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고 사람들을 선동한다. 이에 대하여 하늘에 계신 자가 저희를 비웃으시고 저 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오늘날 너희 위에 나를 대리할 왕, 나의 아들 을 왕으로서 시온에 세웠다고 하신다. 그가 철장으로 세계를 다스릴 것(하나 님 께 대한 반역을 심판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참 지혜는 그 아들에게 입맞추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 지 않으면 길에서 망할 것인데 그 진노가 급하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대 리 왕이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에게 보이시는 모범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11 장에서, 예수께서, 죄악과 그 결과로서 지게 된 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부르시면서 참으로 쉬는 비결에 대하여 '나의 멍 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신다.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하나 님께 대하여 지신 멍에는 쉽고 가벼운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수호신을 원했 고 자기 위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수호 신으로서 권력이나 사람이나 우상을 숭배했다. 우상숭배는 탐욕이라고 했는 데 그것은 곧 자기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한 바로 그것이다. 마귀의 꼬 드김이 좋아 보였던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권위아래 참 자유를 느끼지 못하고 결박과 부자유를 느꼈 던 것이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 사 람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될 때 모든 희생으로부터 자유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을 대리한 자유롭 고 영광스런 왕이 될 것이다. 우리는 남편의 권위, 또는 아버지의 권위로서 의 하나님의 권위를 알고 그에게 영광과 감사와 순종을 드리며 그의 복되신 다스리심을 받고 살도록 피조된 피조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느끼는 반역은 고쳐져야 한다. 그것이 사 람을 자유케 하는 길이다. 그 반역을 고칠만한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가 약속 되었다(창3:15). 그것이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성취되었고 이제는 온 세계에 전파되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출현할 새 인류(롬5장)는 만물을 그 발아 래 복종시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물도 썩어짐의 허무한데 굴복하는 데서 떠나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동참할 날을 탄식 가운데서 학수고대 하고 있다(롬8:18-25).
18 no image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4) (1)
rpress
4087 2001-05-03
강세형 목사(광양은송교회) 소요리문답 제10문(4) 문 :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답 : 하나님이 사람을 남녀로 지으시되(창2:24, 말2:15, 마19:4-6), 자기의 형상대로(창1:27) 지식과(골3:10) 공의와 거룩함이(엡4:24) 있게 지으사 모 든 생물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창1:28). 우리는 지금 사람이 그 원형에 있어서 어떠한가를 배우고 있다. 사람이 원래 어떠한가를 앎으로써 사람이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고 그렇게 되 면 잘못된 현실을 고치려고 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된다. 사람은 관계의 존재인데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 심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한 떳떳하고 존귀하 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평등하며 만물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것 을 다스리도록 되어 있고 부부 관계에 있어서는 질서와 조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원래의 모습이다. 바로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루었으며 그 앞 시간에는 부부관 계 를 다루었고 첫 시간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일부 다루었다. 오늘은 첫 시 간에 다루었던 부분을 마무리하려 한다. 혹 사람들이 말하기를 기독교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라 한다. 그러 나 이 명제에는 오류가 있다. 민주주의와 신본주의가 잘못 대조되고 있는 것 이다. 기독교는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인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기독 교는 '권위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인 것이다. 민주주의란 하나님께 대한 관 계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관계 에 있어서 신본주의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결과가 인본주의를 택할 때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일단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존중하고 폭력을 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신본주의를 택하게 함에 있어 민주주의적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즉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고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진리에 도달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에 실패한다면 따로 나와야 한다. 민주주 의란 다수결에 의하여 진리를 양보하는 제도가 아니라 진리에 이르는 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절차적 정당성이다. 민주주의는 권위주의보 다 시간이 더 걸리고 인내심이 필요하다. 대화와 토론이라고 하는 지루한 과 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기독교의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이다. 개신교가 여러 교파로 나누인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기독교의 대인적 원리가 민주주의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기독교는 대신 관계에 있어서 신본주의이기 때문에 저마다 진리를 양보할 수 없기 때문이고 셋째 근본적 이 유는 교회에는 죄와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신사적인 대화와 토론의 부 재가 분파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대화와 토론의 부재라고 하는 이러한 그릇 된 비민주적 태도 또한 교회의 오류의 일부이기도 하다. 탐욕이 분리의 원인 이라고 한다면 로마교에는 탐욕이 없어서 외형적 하나됨을 유지하게 된 것인 가라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로마교는 하나됨을 자랑하지만 비진리로 하나됨보다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서 는 불가피하게 나누일 때는 나누이는 것이 낫다. 권위주의의 폐해는 지식에 있어서나 행위에 있어서나 오류가 득세하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권위주의적 태도를 취하거 나 다른 사람에 대하여 권위주의적 굴종주의 를 택할 때에 인류는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비진리의 억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2000년의 기독교 역사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한편 민주주의가 성경적 원리임을 성경이 자증하고 있다(마18:1-4, 20:25-27, 행15장, 갈2:11- 14).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존귀하게 지어졌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에 대 하여 교만한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범죄 행위이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기 본적으로 평등한 것이다.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권위 가 존재함을 성경은 아주 부인하고 있지는 않다(엡6:1-4, 벧전5:5-6). 그러 나 이러한 권위는 상당히 제한적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권위도 권위 자체 때 문에 통용된다기 보다는 사리에 맞고 설득력이 있을 때 통용되는 것임에 틀림 없다. 그렇지 않으면 겸손히 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부모라 할지라도 자식 에게 권위로 누르려는 태도보다는 사랑으로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물며 동역자들 사이랴! 예수님도 자기를 시험하려는 도전적인 질문 들에도 핏대를 올리지 않으시고 겸손히 설명을 가하심으로써 사람들 을 가르치 시고 진리로 인도하지 않으셨던가? 겸손은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가장 중요 한 덕목 중 하나이다. 그런데 혼동하지 말 것은 굴종은 겸손이 아니라는 사실 이다. 권위주의에서는 결코 겸손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거기서는 오로지 교 만이나 굴종밖에 나올 것이 없다.
17 no image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3) (1)
rpress
4515 2001-02-14
강세형 목사 소요리문답 제10문(3) 문 :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답 : 하나님이 사람을 남녀로 지으시되(창2:24, 말2:15, 마19:4-6), 자기의 형상대로(창1:27) 지식과(골3:10) 공의와 거룩함이(엡4:24) 있게 지으사 모 든 생물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창1:28). 지난 시간에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존귀하다 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대할 때 존귀하게 대하여야 하고 그것은 곧 사 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비굴해지거나 혹 은 교만한 권위의식을 버려야 함을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는 지난 시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적 가치에 관련하여 더 할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는 뒤로 미루고, 오늘은 사람을 하나님이 지으실 때 존귀하게 지으셨는데 어 떻게 존귀한가 하는 것을 살펴보겠다. 그렇게 존귀하게 된 이유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사실을 생각하고자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창1:27 )은 신약에 의하면 지 식과(골3:10) 공의와 거룩함이 있게(엡4:24) 지으셨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서 로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펴보겠다. 창세기 1장이나 2장에서 이미 하나님께서는 지식과 지혜와 능력이 있고, 하나 님은 만물 위에 뛰어나시고, 하나님이 만물과 그 질서를 정하시고, 인생의 갈 길을 정하시고, 또 인생의 선악의 표준이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물을 취급하심에 있어서 사람을 특별하게 대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그 로 하여금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듣고 또한 하나님께 무엇을 아뢰며, 하나님의 뛰어나신 생각을 이해하고 거기 에 적절히 반응하며, 또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고 마음으로 찬동하고 행위로 순종하는 도덕적 존재로 지으심을 받았다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생물들은 본능만 주어졌지만 사람만은 하나님과 사귈 수 있도록 본능을 초월 하는 도덕적 존재가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취한 태도를 보아서 죄짓기 이전에는 아주 떳 떳이 하나님 앞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상태는 아주 고귀하고 복 된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로써 결국 하나님께서 원래 사람을 지으셨 을 때에는 그렇게 아주 높은 수준에, 복된 상태에 지으셨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이런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토록 고귀한 사람이 극도로 타락하게 됐는데(왜냐하면 죄악은 善과 연속선상에 있지 않고 격리되어 있기 때문에)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회 복시키기 위해서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셨다.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아 드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크신 희생을, 피 흘리시는 희생 을 치르게 하셔서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하나님은 기뻐하셨다. 믿는 자들 로 하여금 성령으로 말미암아 큰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고 또 자꾸 변화되어 가게 하신다(고후3:18). 믿는 자가 회복하게 된 것은 하나 님의 형상인데 그것은 무엇보다 지식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골3:9). 그것 은 사람이 도덕성을 상실하면 건전한 비판의식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믿는 자는 새 사람이 되었는데 그는 무엇 보다 지식이 있 는 사람이 되었다. 여기 지식이라는 말은 진리라는 말과 통하고 진리라는 말 은 참이라는 말과 통한다. 참의 반대는 거짓이다. 그래서 골로새서 3장 9절 은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고 시작한다.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 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 ‘지식’이라는 말은 ‘참’이라는 뜻과 연결된다. 지식은 참에서 나왔다. 참은 진리이고 진리는 지식이다. 참이 아닌 것이 어떻게 진리이겠으며 진리가 아닌 것이 어찌 지식 이겠는가? 속임수이지! 속임수는 지식이 아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참이시다(롬3:4)! 이 ‘참’은 의와 거룩함으로 연결된다 (엡4:24). 거룩함을 ‘진리의’ 거룩함이라고 하였는데 여기 ‘진리’는 참 을 의미한다. 의와 거룩함은 참의 의와 거룩함이다. 의와 거룩함은 참에서 나 왔다. 새사람에게는 의와 거룩함이 있다. 타락한 사람에게는, 죄지은 사람에 게는 의와 거룩함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는 의가 있고 거룩함이 있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사람을 그 원래의 지위에로 회복하심이다. 사람은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도 덕적 존재이다. 이것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식과 공의와 거룩함이 있게 지으셨다’는 의미이다.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