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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5 (00:00:00)
하이델베르크<39>


개혁주의 인간론


이윤호 장로_‘선교와 비평’ 발행인



62문> 우리의 선행은 왜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될 수 없으며 의의 한 부분이라
도 될 수 없습니까?
답>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 있는 의는 절대적으로 완전해야 하며 모
든 면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
한 최고의 행위라도 모두 불완전하며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63문>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행에 대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상주시겠다
고 약속하시는데, 그래도 우리의 선행은 아무 공로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
까?
답> 하나님의 상은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고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64문> 이러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무관심하고 사악하게 되지 않겠
습니까?
답> 아닙니다.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진 사람들이 감사의 열매
를 맺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강단에서 설교되어지는 내용 중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 중 하

나는 ‘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구원은 선행이 아니라 오직 믿음에 의한 것
이라는 사실이 늘 선포되고 있습니다.

‘믿음’에 대한 관심 가장 높아

세상을 둘러볼 때 구원이 정치 해방이나 다양한 도덕적 접근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회가 적지 않음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조류 가운데 우
리 교회가 믿음에 대해서 성경적인 고백을 수호하고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
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행과 믿음의 문제에 대해 소중한 고백을 간직한 우리는 신앙 선배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우선 복음을 들고 이 땅에 발을 디뎠던 선교사님
들을 기억합니다. 당시 그들을 파송했던 미국 장로교회에 자유주의적 신학
사상이 만연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가장 보수적인 신학을 우리
교회에 뿌리내리려 노력했던 선교사님들의 노고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
다.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구원은 선행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진리
가 우리 속에 자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개혁주의 신앙의 기초가
되는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을 교회에 정착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리고 더 이른 시기로 올라가면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신앙 선조들의 영향
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때만 하더라도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진리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할 자리
를 사람의 선행으로 대신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습니
다.
당시 로마교회는 사람의 행위가 구원에 미치는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
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사람의 행위가 더하여 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
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 가운데는 훨씬 더 잘못된 생각을 가진 자들도 있
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선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의에 이를 수 있다고 가
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의 기초를 이룬 사람은 그 이전 시대의 펠
라기우스였습니다. 비록 교회는 펠라기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했지만 그의 사
상은 여전히 교회에 남아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선행에 대한 로마교회와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생각 속에 자리하고
있는 근본적인 뿌리를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단순히 성도의 선행을 얼마만
큼 중요시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즉 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문제에 그 출발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사람을 건강한 존재로 바라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 없이도 그분의 뜻을 알 수 있고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은 바
로 이러한 인간 존재에 대한 시각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중세 로마교회는
사람의 본성이 비록 심각하게 훼손되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할 수 있
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들이 실천했던 선행과 고행은 의에 이르는 하나의
방편이었습니다.
개혁주의 교회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인간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최초 사
람의 범죄 후, 모든 그의 후손들은 태생적으로 완전히 부패한 존재로 태어난
다는 것이 우리 개혁주의 교회의 고백입니다.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 없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어떠한 선행으로도 그분의 의
에 부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선행이 하나님 앞에서 의
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개혁주의 인간론에 그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혁주의라 지칭하는 교회 가운데 선행으로 의에 이른다는 주장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러
한 가르침에 귀 기울이지 않
습니다. 그렇지만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못하여 신앙 생활에 혼
돈을 가져오는 경우가 때로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강단에서 믿음을 강조
하는 설교가 이루어지면서도 그것이 성령의 역사에 의존하기보다 오리려 사
람의 이성과 감각에 호소하는 경우입니다.

믿음은 성령의 역사에 속해

불신자들이 교회로 들어오는 일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가능하다고 우
리는 고백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세상에서 고안된 방법을 통해 교회의 부흥
을 꾀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이신칭의의 원리와
펠라기우스적 인간론이 서로 공존하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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