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하이델베르크<17>

그들은 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고백했는가


이윤호 집사_선교와비평 발행인


26문> “전능하신 성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나는 믿사오며”라고 고백
할 때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답>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아무것도 없는 중에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한 그의 영원한 작정
과 섭리로써 이 모든 것을 여전히 보존하시고 다스리심을 믿으며, 이 하나님
께서 그의 아들 그리스도 때문에 나의 하나님과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나는
믿습니다.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그가 나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
워 주시며, 이 눈물 골짜기 같은 세상에서 당하게 하시는 어떠한 악도 협력
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나는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기에 그리하실 수 있고, 신실하신 아버지이기에 그리하기를 원하십
니다.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전능하다
는 것은 무엇
이든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하나님
의 전능하심으로부터 ‘특별한’ 도움이나 혜택을 바라는 때가 많은 것 같습
니다.

능력으로 해결되는 혜택 바라기도

특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나 무엇인가 절실히 필요할 때, 전능하
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바람에 발맞추
어 간혹 선교지에서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과연 하나
님은 전능하신 분이구나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에서 하나님에
대한 호칭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특이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호칭 중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는 부분, 즉 ‘전능하신 하나
님’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경우는 과연 어떠한 때였을까요?
창세기에서 하나님을 ‘전능자’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은 놀랍게도 하나님
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여주거나 어떤 극적인 구출을 연출하는 장면이 아니
라 오히려 그분의 구원 계획을 보여주는 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고 그를 열국의 아비
가 되게
하신다고 합니다(창 17:1-4). ‘전능하신 하나님’이 야곱으로 하여금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겠다고 합니다(창 28:3-4). 야곱에
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많은 국민이 그에게
서 나고 그의 허리에서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창 35:10-11).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셨다고 합니다(창 48:3-
4). 그분은 구속의 역사를 이끌어 나가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고백하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알았던 것 같습니
다. 26문에 대한 답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앞부분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이고 뒷부분은 그의 전능하심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입니
다.
이 두 부분이 만나는 중심에는 바로 구속 역사의 핵심인 그리스도가 있으
며, 그로 말미암아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음을 고백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도 아무 의미
가 없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작성하고 고백하는 당시는 ‘눈물 골짜기 같은 세
상에서 악을 당하던’
시대였습니다. 개혁주의 신앙을 간직한 성도들이 억압
자들로부터 적대적인 눈초리를 받아야 했을 뿐 아니라 칼과 몽둥이의 위협까
지도 당해야했던 고난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그들의 신앙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던 이유
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의 백성을 경영해 나가시는 전능하심을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고난을 당해야 했던 바울의 고백도 동일했습니다. 그를 죽음에 처하
도록 한 대적자들로부터 벗어났을 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찬양할 수도 있었
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울 역시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에서 그분의 전능
하심을 찬양했습니다. 주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우리가 그의 자녀가 되
었다는 그 사실을 ‘전능하신 주’께서 알려주셨다고 합니다(고후 6:16-
18).
우리는 어떠한 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고백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
니다. 우리의 눈에 특별하게 보이는 것들을 기대함으로써 하나님의 전능하심
을 고백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우리 자신
의 모습을 봅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구속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그분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된 그것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크
신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능력은 구원하심에 있어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고백할 때 교회 밖에서 의미하는 ‘전
능’과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96 하이델베르크<35> 성도 간 교제의 조건_이윤호 장로
rpress
4174 2007-07-04
95 하이델베르크<34> 보편적이지 않은 보편교회_이윤호 장로
rpress
4615 2007-06-21
94 하이델베르크<33> 오직 성령충만을 받으라_이윤호 장로 (37)
rpress
5082 2007-06-07
93 하이델베르크<32> 그날에 우리의 눈물을 닦아 내시리라_이윤호 장로
rpress
3888 2007-05-23
92 하이델베르크<31> 천년왕국은 언제?_이윤호 장로
rpress
3859 2007-04-26
91 하이델베르크<30> 위의 것처럼 보일지라도_이윤호 장로
rpress
3940 2007-04-11
90 하이델베르크<29> 올라가셨지만 지금 여기에_이윤호 장로
rpress
3940 2007-03-28
89 하이델베르크<28>그리스도의 부활을 어떻게 기념하는가?_이윤호 장로
rpress
4405 2007-03-14
88 하이델베르크<27> 행복으로의 초대(?)_이윤호 장로
rpress
4497 2007-02-28
87 하이델베르크<26> 십자가에 달린 옛사람_이윤호 장로
rpress
4466 2007-02-07
86 하이델베르크<25> 교회에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는가?_이윤호 장로
rpress
4371 2007-01-25
85 하이델베르크<24> 교회가 능욕(凌辱)을 받지 않는다면_이윤호 장로
rpress
4583 2007-01-10
84 하이델베르크<23> 왜 본디오 빌라도인가?_이윤호 집사
rpress
4778 2006-12-20
83 하이델베르크<22> 과학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_이윤호 집사 (1)
rpress
4351 2006-12-06
82 하이델베르크<21> 우리는 영광스러운 노예_이윤호 집사
rpress
4565 2006-11-15
81 하이델베르크<20> 나는 크리스천인가?_이윤호 집사
rpress
4571 2006-11-01
80 하이델베르크<19> 하나 더했을 뿐이지만_이윤호 집사
rpress
4246 2006-10-18
79 하이델베르크<18> 하나님의 섭리와 ‘교회보호형’ 타협가들_이윤호 집사
rpress
4675 2006-09-27
Selected 하이델베르크<17> 그들은 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고백했는가
rpress
4715 2006-09-15
77 하이델베르크<16> 사도신경은 종말론적 고백_이윤호 집사
rpress
4209 2006-08-30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