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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7 (00:00:00)
하이델베르크<33>

오직 성령충만을 받으라


이윤호 장로_선교와비평 발행인


53문> 성신께 관하여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답> 첫째, 성신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둘
째, 그분은 또한 나에게도 주어져서 나로 하여금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은덕에 참여하게 하며 나를 위로하고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십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 같
습니다. 성경말씀을 겸손하게 살핌으로 우리 가운에 일하시는 성령님의 사역
을 깊이 깨닫는다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성경은 성령님의 사역을 무시하
는 행위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조심스러운
측면 또한 없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데는 오순
절운동, 은사운동 그리고 빈야드운동과 같은 현대 성령운동의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에 대해 어느 때보다 관심 높아져

우리는 성령충만을 바
라며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데 열심입니다. 이것은 바람
직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도가 그것을 교회에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
다.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우리에게 “오직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렇지만 성령
충만을 바라고 원하는 것만으로 사도의 명령에 순종했다 할 수는 없을 것입
니다. 중요한 것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충만 받는 것이
성도의 어떠한 상태를 말하는지 말씀을 통해 알아 가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보여주는 성령충만함에 대한 외적 증거는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에는 스데반, 베드로, 바나바, 바울 등과 같은 사람들이 성령충만한 사람으
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성령충만한 사람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근거
와 성령충만한 결과로 그들에게서 드러나는 현상을 우리는 성경말씀에서 발
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분들의 모범을 통해서 성경의 가르침과 우리의 생각 사이에 상당
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오순절 혹은 은사주의자들
이 정립해 놓은 성령충만에 관한 인식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 이

대한 부분적 이유일 수 있습니다. 즉 방언, 예언, 치유와 같은 특별한 은사
와 성도의 내적 체험과 같은 범주에서 성령충만을 이해하는 것이 그것입니
다.
그렇지만 성경말씀이 그들을 성령충만한 사람으로 확증하는 근거는 무엇보
다 그들 가운데 드러나는 신앙적 삶입니다. 예컨대 스데반은 성경에서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그것은 그의 신앙적 삶이 다른 사람에게 모범
이 되어 집사직분을 감당하기에 합당한 성도였음을 보여줍니다. 바나바 또
한 성령충만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이제 막 복음을 알기 시작
한 안디옥의 성도들을 온전한 신앙의 길로 이끄는데 합당한 경건함과 지혜
를 가진 사람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성경말씀은 복음선포를 성령충만과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
과 베드로는 그들이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충만함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들
앞에서도, 새로운 선교지에서 당한 혼란한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
대하게 증거할 수 있었음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파
하라
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인식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시대적 사명
을 감당할 줄 아는 성령충만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말하는 성령님의 역할과도 조
화를 이룹니다. 성령님에 관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지만 요리문답
은 그 중에서 특별히 두 가지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부 성
자와 더불어 영원한 하나님이신 성령님의 신분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믿음의 성도들에 대한 성령님의 사역으로,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의 구속사역에 온전히 참여하여 신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일하십
니다. 이것은 ‘술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을 충만을 받을 것’을 요구하는
바울의 명령과도 한 뜻을 이룹니다. 이 명령은 복음에 합당하지 못한 어리석
은 자들의 생활을 벗어나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실천하는 삶,
즉 성령충만한 성도의 상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엡 5:17, 18).
은사주의의 영향을 받은 교회는 성령의 특별한 은사들이 드러나는 것을 성령
님의 사역과 동일시하면서 개혁주의 교회는 성령님의 사역을 무시한다고 비
판합니다. 그렇지만
개혁주의 정신은 성령을 소멸하지도 훼방하지도 않습니
다. 성경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 개혁주의가 지향하는 근본적인 삶의 태도이며 그것은 성령님의 사역을 통
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부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출발점, 즉 우리의 유일한 위로를 그리스도에게 속
함에서 찾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에게 온전히 의존할 때 가
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곧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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