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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6 (00:00:00)
하이델베르크<2>

위로의 메시지

이윤호 집사_선교와비평 발행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전체를 흐르고 있는 대 주제는 ‘위로’입니다. 이것
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나올 당시 교회가 처한 역사적 형편과 관계있으
며, 오늘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 그 교훈의 힘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
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작성된 때는 개혁신앙을 추구하는 개혁가들과 이들
의 가르침을 받는 성도들에게 결코 순탄한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종교개혁이
한창이던 1555년 아우구스부르크 평화회의가 개최되면서 독일에서의 종교 갈
등이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1563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이 작성될 시점의 전후사정은 신교와 구교의 갈등이 유럽전역에서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 구교 간의 갈등 심화돼

독일과 이웃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발간되기 바로
전 해 ‘위그노전쟁’이라 불리는 동란으로 오래된 갈등이 폭발하기에 이
르렀
습니다. 바로 구교와 신교 간의 전쟁이었습니다. ‘위그노’는 프랑스 내의
신교도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신교는 독일과 스위스를 통해 들
어와서 칼빈파를 중심으로 각 계층에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 프랑
스의 왕들과 구교도들은 이들을 탄압해 왔습니다. 결국 1562년 구교도들의 위
그노에 대한 바시에서의 학살을 시작으로 전쟁의 막이 올랐던 것입니다.
바시는 프랑스 동부지방의 도시로서 독일 서부에 위치한 하이델베르크와는 그
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습니다. 이 전쟁을 통해서 수많은 신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게 됩니다. 종교전쟁으로 불리는 이 동란에 정치
적 배경이 있건 없건 개혁신앙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큰 시련이었음에 틀림
없습니다. 이들이 목숨의 위협을 피해 이웃하고 있는 독일로 넘어 들어갔을
때 이를 지켜보던 독일 성도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헤아려볼 수 있을 것입니
다.
독일 북서쪽에 위치한 네덜란드의 신교도 역시 순탄한 역사 속에 있지 않았습
니다. 루터의 개혁이 시작된 후 1529년에 이미 칙령을 발표하여 개혁사상을
유포하는 행위를 사형에 해당하
는 범죄로 규정했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알 5세가 1556년 스페인과 네덜란드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필립 2세에게 물
려주었을 때 네덜란드에 대한 핍박은 더욱 거세지게 됩니다.
필립 2세의 구교 중심의 종교정책은 반란과 살육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특히
1567년부터 1573년까지 역사적으로 신교도들을 탄압하는 ‘공포정치’라 불리
는 정황이 지속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을 당하고, 망명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566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네덜란드
어로 출판되어 성도들의 손에 들려졌습니다.
독일의 경우, 신교도들은 비교적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대다수는 루터파였습니다. 칼빈주의는 아직 정식으로 인정되지 않은 때였
습니다. 칼빈의 가르침은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는 1648년이 되어서야 공
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니까요. 이러한 이유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작성
에 참여한 사람들이 구교뿐 아니라 ‘루터파’로부터도 심한 반대에 직면했
던 것입니다.
독일 역시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신교를 지지했던 영향력 있는 사람
들조차 다시 구교로 돌아
서는 조짐이 있던 때였습니다. 독일의 국제적 도시
하이델베르크. 당시 프랑스, 화란, 영국 등지로부터 이주해 온 많은 개신교도
들이 정착했던 팔쯔의 도시. 많은 이들이 고국에서, 그리고 이웃 나라에서 일
어나고 있는 교회에 대한 박해의 소문들을 들으며 고심하던 시련과 혼란의 시
대였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작성되어 교회에서 읽혀지던 시대는 결코 평온한 시
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신앙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시대였습니다. 올바른 신앙을 간직하기 위해서 교회가 핍박을 자처하던 시대
였습니다. 이러한 때 주어진 고백문서이기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내용
은 단순히 궁금한 내용을 신학적으로 해설하는 형식이 아닙니다. 이 요리문답
은 신앙적 삶에 대한 교회의 고백적 가르침이 힘있게 나타나는 위로의 메시지
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읽고 공부하고 고백한 사람들은 분명 ‘진
정한 위로’를 필요로 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위로의 메시지 힘있게 주어져

떨쳐버릴 수 없는 생각이 있습니다. 만약 16세기 하이델베르크의 성도들이 21
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를 본다면, 지금 우
리야말로 ‘위로’를 필요로 하는 시
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발전된 지식 속
에서, 풍요로운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우리의 신앙의 기준들은 날로만
흐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6세기 당시는 교회가 싸워야할 대상이 분명한
시기였지만 지금은 우리가 맞서야 할 대상마저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들이야말로 ‘진정한 위로’를 필요로 하는 시대를 살아
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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