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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2 (00:00:00)
하이델베르크<4>

비참함을 깨달을 때

이윤호 집사_'선교와 비평’ 발행인


2문> 이러한 위로 가운데 복된 인생으로 살고 죽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알
아야 합니까?
답> 다음의 세 부분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
가, 둘째,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셋째, 그러
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3문> 당신의 죄와 비참함을 어디에서 압니까?
답> 하나님의 율법에서 나의 죄와 비참함을 압니다.


1618년 네덜란드의 도시 돌트에서 중요한 교회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이듬해
까지 장기간 지속된 이 회의는 종교개혁 진행과정에서 신교내부로부터 일어
난 신학적 오류를 바로잡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교회대표들은 알미니안
주의자들의 잘못을 드러내고 개혁주의의 원칙을 재정립했습니다. 이때 표방
된 내용이 오늘 우리에게 칼빈의 5대교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돌트신조 칼빈주의 5대 강령 정립


개혁주의 신학의 요점을 잘 담고 있는 칼빈의 5대교리에 흐르고 있는 중요한
원리중 하나는 인간의 전적무능, 혹은 전적부패입니다. 당시 알미니안주의자
들 역시 인간이 무능하고 부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인간본성의 가능성
에 여전히 여지를 남겨두었습니다. 이에 대해 개혁가들이 다시 한 번 명확히
다진 원리가 바로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했으며,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것이었
습니다.
돌트총회의 선언은 그로부터 약 55년 전에 작성되었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의 가르침과 조화된 것이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목차역할을 하
는 제2문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원의 원리에 대해서, 감사하는 삶
에 대해서 이해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인식해야할 내용이 바로 인간본성의 비
참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400여년이 지난 오늘, 개혁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사이의 경계선이 많
은 부분 손상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개혁가의 후예를 자처하고 있지
만 많은 경우 ‘비참’과 ‘무능’과 같은 말들은 우리의 마음에서 점점 잊혀
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러한 단어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우리 스

로 못할 것이 없는 냥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예컨대, 전도를 통한 부흥전략이 그러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려는 노력이 그러
합니다. 우리가 잘 계획하여 열심히 노력만 하면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
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밤을 새워가며 공부만 열심히 하면 성령의 도
우심 없이도 하나님을 잘 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하
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비참함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교회를 알아 가는 첫
걸음이라는 것입니다.

비참한 상태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첫걸음

여기 율법의 역할이 있습니다. 율법을 통하지 않고 느끼는 비참함은 무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비참함을 느끼는 경우는 언제인가요? 경제
적으로 어려울 때,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손가락질 받을 때 혹은 깊
은 철학적 사색에 빠졌을 때 비참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
한 비참함은 세상이 가지는 비참함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심으로 이 세상의 다른 이들과 구별된

존재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의 백성들은 구별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
님은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율법을 통해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율법은 하나님이 그의 구별된 백성들과 긴밀히 교제하시고자 하는 방편이었습
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의미를 잘못 알아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 하
나님과의 교제에 오히려 울타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율법을 지킨
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 즉 죄악된 모습과 비참함을 잘 발견하여 하나님과 더
욱 가까이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참
함을 느끼는 것은 세상적 환경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애통 느껴야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의 시작에는 바로 우리의 죄된 모
습과 비참함의 자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코람데오, 오직 하나님 앞
에서 우리의 비참함을 인식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제를 통해서
올바른 교회의 모습을 갖추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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