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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14>

회복해야 할 믿음의 전투성

이윤호 집사_선교와비평 발행인


20문> 그러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멸망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
든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까?
답> 아닙니다.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그의 모든 은덕을 받
아들이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습니다.

21문>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답>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이
진리라고 여기는 확실한 지식이며, 동시에 성신께서 복음으로써 내 마음속
에 일으키신 굳은 신뢰입니다. 곧 순전히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때
문에 하나님께서 죄사함과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에
게도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작성된 종교개혁 시대에 강조되던 원칙들 중 하나
는 바로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은
교회가 설립되던 시기부터 고백되어온 중요한 원칙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오

늘날 많은 경우 믿음이 단지 관념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
니다.

관념적 믿음 의미 없어

초대교회의 믿음을 가진 성도, 즉 신자(信者)들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
백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세기 당시 ‘주’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
되었는데 가장 쉽게는 단순히 존경을 나타내는 호칭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주’라는 단어는 단순한 존칭 이 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큰 의미를 지
닌 뜻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일컫는 의미였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백
성들은 여호와라는 말을 거룩하게 여겨서 함부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서 여호와를 지칭할 때 다른 단어를 사용하곤 했습니다. 예컨대 구약성경의
헬라어 역인 70인 역에서는 여호와를 지칭할 때 ‘주’라는 말을 사용했습니
다. 그러므로 유대적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
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1세기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스스로를
큰 곤경 속으로 몰아넣는 위험한 행위였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스스로를 하
나님으로
선언함으로써 유대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저
주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 예수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선언하는 것 역
시 죽음을 동반할 수도 있는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강력한
고백적 선포는 일부 유대인들의 가슴을 파고들어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
릎 꿇게 했지만, 많은 이들로 하여금 분노의 칼을 갈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
습니다.
당시 ‘주’라는 단어가 이것과는 또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그것
은 바로 로마제국의 황제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1세기 당시 사람들은 로마
제국을 ‘세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만큼 로마제국은 전 세계를 호령하는
거대한 국가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 어떤 나라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불멸
의 제국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로마제국의 심장부에는 바로 황제가 있었으
며 그 황제는 세상의 어떤 존재보다 뛰어난 존귀한 ‘주’로 받들어지고 있
었습니다.
로마인들이 그리스도를 알았을 때 그분을 ‘주’로 고백하는 일은 결코 쉬
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세상의 가장 위대한 존재
인 로마황제보다 더 큰 이로 선언하는 것이기 때
문입니다. 황제숭배라는 이
데올로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그리스도를 세상의 유일한 ‘주’로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시민으로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
는 것은, 세상의 지극히 높은 자로서의 황제를 거부함으로써 핍박과 갈등을
예견하는 고백이었습니다.
이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올바른 믿음을 통
하여 세상의 보편적 가치관을 부정함으로써 세상과 자신을 분리시켜 나갔습
니다. 그들은 ‘주’이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모습을 이루는데
있어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도
말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직면했던 믿음의 문제는 관념적이거나 단지 지
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위험까지고 감수해야 하는 삶의 문제였습니
다.
오늘날 우리 교회 역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
습니다. 그렇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의 고백이 가졌던 믿음의 전투성을 우리
가운데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교회를 핍박하지
않으며 교회에 신앙의 자유를 주기 때문에 그렇다고 변호할 수도 있을 것

니다.

세상 속에 안주하고 있는 교회

그렇지만 세상의 가치관이 날로 사악해져 가고 세상의 수많은 인본주의적
사상과 아이디어들이 교회로 침투해 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전투성을 잃은
우리의 믿음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
답의 20, 21문에 관하여 우리는 지식과 삶을 포함하는 전인격적인 태도로 묵
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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