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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15>

사도신경만으로 충분한가?


이윤호 집사_선교와비평 발행인


22문>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답> 복음에 약속된 모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복음은 보편적이고 의심
할 여지없는 우리의 기독교 신앙의 조항인 사도신경이 요약하여 가르쳐 줍니
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우리가 신앙하는 믿음을 가장 잘 집약한 내용으로 생각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을 함께 고백하며 보편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신앙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신경
과 같은 훌륭한 고백서를 가진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보편적 신앙의 기준 ‘사도신경’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2문에 대한 대답을 읽으면서 우리가 꼭 기억해
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복음에 약속된 모든 것에 대한 요약으로
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사도신경은 수많은 값진 물건들을 담
고 있는 상자와도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네모반듯한 단순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갖가지 소중한 물건을 담고 있는 상자입니다. 만일 이 상자를 값을
지불하고 사려고 한다면, 단지 상자의 값만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상자 속
의 모든 물건들의 값까지도 지불해야 하는 아주 값진 존재인 것입니다.
때로 상자 속에 있는 물건을 보지 못해서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
우도 있습니다. 20세기 초 미국북장로교회에서는 “사도신경으로 충분하다”
라는 말로 인해 논쟁이 일어났던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북장로교회 선
교부에서의 선교 본질에 관한 의견 차이로 인해 메이첸(J. Gresham Machen)
의 주도로 장로교 해외독립선교부(1933년)가 태동할 즈음의 일입니다. 이러
한 일이 발생한 배경에는 20세기 초 유럽에서 밀려들어온 자유주의와 세속주
의의 여파로 일어난 신학적 논쟁이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가 처한 상황은 여러 장로교 목사들이 서명했던 오번선언서(1924
년)를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다섯 가지 근본 원칙들
즉 성경무오성, 그리스도의 동정녀탄생, 속죄사역, 육체부활, 예수님의 초자
연적 기적능력과 같은 것들은 모두 이론에 불과
하며 교인들에게 이들을 믿도
록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사상
에 대하여 어떤 이는 포용하는 입장을 그리고 다른 이들은 이를 결코 수용
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포용주의의 중심에는 미국북장로교회 선교부를 대표하는 로버트 스피어
(Robert Speer)가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오번선언서에 동의를 했다 하더라
도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포용해야 하며 그들을 선교사로 보낼 수 있
다고 했습니다. 스피어가 호레이스 부쉬넬(Horace Bushnell)의 말을 빌려 주
장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도신경으로 충분하다”였습니다.
이 말은 신조와 사상을 통해 우리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배척할 것
이 아니라 비록 자유주의적이거나 알미니안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
더라도 사도신경을 말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모두 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의
표출이었습니다.
스피어는 교리와 신학에 대한 논쟁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에
손상만 줄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복잡한 교리에 대한 논의보다 서로 협력하
여 복음전하는 일에 전력해야 할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이와
같은 포용주의
적 입장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장로교 해외독립선교부
가 태동했습니다.
사도신경을 포용주의의 실천에 이용했던 사람들은 사도신경이라는 상자 속
의 내용물들을 보지 못한 채 상자의 겉모습만 바라보았습니다. 겉모양이 비
슷한 상자는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도신경이 담고 있는 내용의 깊이를
알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상자 속의 소중한 것을 잘 보지 못하는 실수는
우리 중에도 흔히 있을 수 있습니다. 늘 사도신경을 암송하면서도 그 내용
이 교회적 삶에서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러한 경우일 것입니다.
사도신경의 말 하나 하나를 교회는 성경 말씀의 토대 위에서 그 의미를 해
석해 나가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 번의 해석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교회
가 역사 속에서 발전해 나감에 따라 끊임없이 재해석해 나가야 할 것입니
다. 이를 통해 복음에 약속된 것들을 더 잘 알아가고 우리 교회는 더욱 역동
적인 모습을 갖추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신앙의 선
배들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사도신경이라는 상자 속에 들어있는 보물
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그 뜻
을 상세히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겉모양만으로 판단할 수 없어

스피어와 부쉬넬은 사도신경을 통해서 다른 가르침에 대한 교회의 포용주의
적 입장을 모색해 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살펴보게 될 사도신경 속에
녹아있는 내용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갈 때 우리는 세상과 거짓 가르침에 대
해 더욱 구별되는 교회의 속성을 발견해 나갈 것입니다.

존귀한 자의 미소

은혜, 축복, 섬김, 평안, 강건, 승리, 담대, 화평… 한 낱말 한 낱말 천천
히 소리 내면서 그 뜻을 헤아리면 이처럼 아름다운 말이 없습니다. 입술로
소리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쪽에 결 고운 물빛 무늬가 퍼져가는 것만 같습
니다. 그런데 그런 아름다운 말 가운데 하나인 ‘존귀’라는 말은 유독 내
영혼에 와 닿지 않는 불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슴 저리는 낱말들 많아

저번 주일 목사님은 ‘성도들은 존귀한 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일점일획
도 틀리지 않고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귀하게 선택받은 자라고 말
씀하였습니다. 그런 관점이라면 나도 존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그렇지만 그 말씀에 ‘아멘’하는
마음의 한편에서는 과연 그렇게 쉽게
‘아멘할 수 있느냐’는 반문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지금도 불교와 미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는 점을 보고 온 날
이면 어린 시절의 나에게 미래에 대한 축복의 말씀보다는 염려를 가장한 암
울한 말씀을 많이 하였습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런 말이 딸의 마음에 오
래도록 남아 있기를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며 실제로 그러리라고는 상상도 하
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소심하고 상처를 잘 받는 나는
그런 말을 가슴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그리고 어렵고 힘든 일이 찾아올 때
마다 그 말을 끄집어내며 존재의 하찮음을 확인했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
로 만나기 전까지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는 비록 횟수는 줄어들었을지 모르나 여전히 그 어두움은 오래되어 익숙한
것으로 내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지난 주간도 부부싸움으로 마음의 평정을 잃었습니다. 부부싸움을 할 때면
나는 한동안 입과 귀를 다물어버립니다. 그런 채로 얼마 동안 시간이 흐르
면 당연히 나를 채우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라 존재의 하
찮음에 대한 자기연민뿐입니다.
잠시 목사님의 설교가 떠올랐다가도 ‘존귀’와는 거리가 먼 내 삶을 되새기
고 말뿐입니다. 그런 마음을 주님께서 모르실 리 없습니다. 어떻게든 그 어
두움에서 이 연약한 자를 건져내고 싶어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
회를 주셨습니다.
교회 식구들과 함께 계곡 나들이를 가던 날 내게 맡겨진 일은 사진 촬영이었
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명이 한데 어울려 있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삼삼오
오 계곡에 발 담그고 있는 모습, 평상에 누워 편안하게 얘기하는 모습, 이런
저런 게임을 하는 모습….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한분 한분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찍고 있었습니
다. 이왕이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찍어드리기 위하여 5분, 10분을 기다리
기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쑥스럽다며 그만
찍으라고 하신 분들도 있었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오기까지 찍고 지우
고 찍고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사진을 열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놀랐
습니다. 촬영 실력이 신통치 않은 사람이 찍었다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

도로 은혜로운 사진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찍어주신 게 틀림없었습니
다. 그리고 더 놀란 것은 성도들의 얼굴에 퍼져 있는 환한 미소였습니다.
그 미소야말로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어느 골짜기에서
고생하며 한숨짓고 눈물 흘리던 사람일지라도 이렇게 하나님 앞에 불려온 자
들은 존귀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알아차렸습니다. 내가 성도들의 미소를 보며 그들을 존귀한 자로 확
신할 수 있듯 하나님을 바라며 웃고 있는 나를 어느 누군가가 바라볼 때에
또한 나를 존귀한 자로 여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일
설교의 한 구절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내가 나를 바라볼 때에는 한심하고 부족해서 도저히 존귀한 자라 할 수 없
지만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속사를 바라볼 때
에는 그 구속사에 당당하게 쓰임 받고 있는 존귀한 자임을 알게 될 것입니
다.”
여전히 내 안의 어두움을 떨어내지 못하는 이 미련한 자에게 주님은 이렇게
정확한 해답을 주셨습니다. 그 해답은 먼 데 있지 않았습니다. 주일 설교에
그리고 동역하며 한
분 하나님을 섬기는 내 곁의 성도들 얼굴에 있었습니
다. 행여 똑같은 잘못을 앞으로 또 저지를까 하여 이리도 가까운 곳에, 이리
도 확실한 해답을 찾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성도들 얼굴 보며 해답 찾아

이제 한 가지 확신을 마음에 품습니다. 언젠가 어머니도 예수님을 만나게 되
는 날, 세상의 그 어떤 즐거움이 주지 못했던 존귀한 자의 미소를 보란듯이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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