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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6 (14:36:23)

햇빛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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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 > 



753-햇빛편지.jpg



   나 아(). 한 글자. 외롭게 보이지만 큰 파급력을 지녔다. 철학적으로는 의미심장한 실존적 단어이다. 그러나 아집, 아상, 자아도취, 아전인수 등의 부정적인 의미에도 많이 연접해 있다. 그만큼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 중에 아집(我執)이나 아상(我相)은 사실 불교적인 용어인데 나를 중심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대상을 바르게 관찰하지 못해 오만과 분노와 고통을 산출한다는 것이다. ,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어 탐욕과 갈등의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세상은 나말고도 너라고 하는 존재들로 가득한데 그 너들이 모두 다 아()로서 나 중심으로 산다는 것. 그래서 독선과 이기성으로 너는 없고 나만 있는 사회가 된다. 이것은 세상의 갈등 구조에 대한 타당한 분석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이 문제의 답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나는 죽었으니 이제 나는 없고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중심으로 삶이 재편성된다. 중생자가 아직 아상에 잡혀 있다면 바울처럼 자신을 쳐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무아(無我)의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성경적 무아는 자기학대나 소극적인 삶의 개념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한 자아의 소중한 가치를 기반으로 타인을 향한 독선과 이기성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이타적 삶으로의 전환을 권고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 자신을 낮추고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의 좌표를 중요시한다. 주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은 이 좌표 위에서의 진정한 자아인식을 전제로 하신 말씀이다.


   마틴 부버도 오래 전에 간파했다. 나와 너라는 세상의 기본 구조를. 하물며 중생자가 세상을 보는 자기중심성을 벗어난 그리스도 중심의 무아와 이타의 삶을 향해 구원 받은 것을 모른다면 어찌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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