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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no image 세례 요한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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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8 1999-05-09
광야의 소리 세례 요한에 대한 오해 세례 요한이 헤로디아의 일로 감옥에 갇혀 지내던 중 제자 둘을 예수님 께 보내어 이렇게 여쭈도록 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 이러한 세례 요한의 행위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요한이 예수님의 메시아 이심을 의심하였던 증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에 근거하여 세례 요한 같 은 선지자도 옥에 갇히는 곤경에 빠져있을 때에는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의 심했었던 것처럼, 우리도 곤경에 빠질 때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의심할 수 있 다는 논리를 펴나가기도 한다. 이런 유의 논리는 어쩌면 자신의 감정을 세례 요한에게 이입시킨 결과라 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성경 본문의 의미나 기록자의 의도를 무시하고 순전 히 사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세례 요한도 그럴 수 있 을 것이라고 쉽게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감정이입을 바탕으 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의심했다고 단정짓는 것은 매우 위험 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믿 어 의심하지 않았다. 이는 박윤선 주석뿐 아니라 대부분 주석가들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이 조금만 수고해서 주석을 참고할 것 같 으면 그런 오류를 쉽게 벗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에 이럴 것이 다"고 얼른 단정짓는다는 것은 결코 정당한 태도라고 할 수 없다. 거기에 한 발 더 나가서 세례 요한 같은 이도 역경 가운데서 오히려 믿 음을 회복하였으니 우리도 역경에 처할 때 세례 요한처럼 믿음으로 이겨나 가자고 외친다는 것은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세례 요한이 의도한 바 도 아니고 본문을 기록한 이가 그와 같은 의미를 담아 놓은 것도 아닌데 어 떤 근거로 그런 망발을 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의외로 상당수의 설교자들이 그런 유의 설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겠는가?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는 요한의 의도는 다른 데 있었다. 그 어투가 이를 증거 한다. 이 어투는 강력한 의문의 직설법이 아니고 가정 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흔히 누구를 기다릴 때, "내가 너 말고 다른 사람을 기다리랴?"고 가정법 어투를 사용하고 있지 않는가? 본문을 대할 때 조금만 수고하면 될 것을,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너무나 분명한 것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간과해 버리는 못된 습성이 남아 있지 않 는가 돌이켜 보아야 한다. 그런 태도를 가지고 일생을 살아간다고 한다면 그 결과를 누가 보장해 주겠는가? 매일 조금씩 누적되어 가는 편견에 휩싸여 살아가는 인생처럼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다.
10 no image 농어촌 교회로 눈을 돌려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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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7 1999-04-25
광야의 소리 이젠 농어촌 교회로 눈을 돌려야 경남북 지역 농어촌 교회를 찾아 다니면서 매우 각별한 느낌을 받았다. 그 첫째는왜 좀더 일찍 찾아나서지 않았던가 하는 것이다. 어느 목회자는 10여년 동안 농촌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 한번도 총 회에서 와 본적이 없었다고 하면서 금번 농어촌부의 방문에 대하여 매우 깊 은 감명을 받고 있었다.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했다. 매월 적지 않은 후원금을 보내는 교회들조차 찾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순히 온라인 입금과 그에 대한 서류 몇 장 주고 받는 것으로 후원이 전부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것은 소위 탁상 행정이라는 표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관심이었다. 같이 음식을 먹고 잠자리를 하고 호흡 을 하는 단 며칠의 방문일지라도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은 매우 큰 격려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 둘째는 어떻게 이처럼 실력 있고 젊고 활기찬 목회자들이 농어촌 교 회에서 일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40대 한창 나이에 10여명 정도의 성도들을 참으로 자신의 몸을 돌보듯 목회하는 그들의 정렬에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이미 주민 수가 많은 읍단위 나 면사무소 소재지는 교회가 여러 곳에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만난 목회자들은 오랫동안 미신에 쪄들고 토속 풍속이 강한 마을 속에 찾아 들어 가 굳이 교회를 세우려는 것이다. 마치 전쟁의 최전선에서 교두보를 확보하 는 특공대처럼 그들은 몸으로 목회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장엄해 보일 정도였다. 누가 그들을 향해 목회는 이런 것이라고 한 수 가르칠 수 있 단 말인가? 그들의 삶은 이미 목회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세가 작다고, 또는 연륜이 적다고 도회지 교회 목사 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후원의 대상 정도로 그들을 알고 있다면 주님과 교회 앞에 회개해야 마땅하다. 그들은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는 선교적 사명으로 농어촌 교회 목회에 헌신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들의 선교적 희생이 있기 때문에 오늘 의 도시 교회는 그리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농어 촌 출신의 훈련된 일꾼들을 공급받고 있는 것이다. 그 셋째는 아직도 교회가 없는 마을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어 느 목회자는 5만분의 1 축적의 경남 지역 지도를 벽지처럼 발라놓고 아직도 교회가 들어가지 않은 지역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그에게 있어 소망은 젊 고 소명있는 목회자들이 마을마다 들어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는 10여년전부터 이 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우리가 조금만 눈을 돌린다면 목회 사역지가 의외로 많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실제로 그가 보여준 지도의 90%지역엔 교회가 없었다. 경 남도 지역의 복음화 율은 겨우 5%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목사 안수를 받고도 아직 사역지가 없어 고민하고 있다면 농어촌 교회 에 시선을 돌려보길 바란다.
9 no image 누구를 위한 부활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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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5 1999-03-23
광야의 소리 누구를 위한 부활절인가? 서구 사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휴가철은 부활절 휴가일 것이 다. 이 때쯤이면 유럽의 대부분 사람들이 휴양지를 찾아 적게는 1주일 많게 는 2-3주일의 휴가를 떠난다. 거리가 텅 비어 음산한 분위기를 느낄 정도라 면 그 정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반면에 우리 나라에서의 부활절 축제 분위 기는 석가탄신일보다 그 정도가 적으면 적었지 많지는 않다. 그렇다고 무작 정 서구 사회의 풍속을 좇아 부활절 축제를 벌이자는 말은 아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 축제가 기독교의 특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이미 세속화 되어 버린 이즈음에 그래도 우리 나라에선 부활절 절기만이라도 원상의 의 미를 잘 담아 둘 수 있도록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대부분 그렇듯이 사람들은 어떤 기념일이 되면 심리적으로 들뜨기 마련 이다. 그 기념일이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민족적인 절기라면 그 정도가 심하 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종교적인 절기인 석가탄일이나 성탄절 역시 그 본 상을 잃은지 오래다. 우리 나라에선 부활절 절기가 아직 세속화되지 않고 있 다는 것은 그나마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 교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활절 연합 예배를 위한 행사 준 비를 보면 적지 않은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말 그대로 부활절 이른 아침에 교계가 연합해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한 예배라면 더할 나 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행사 준비위원들은 그 정도에서 좀 지나 치지 않았나 걱정이 앞선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3월 1일부터 4월3일까지 헌혈 운동 및 실직자를 위한 모금 운동이 전국적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3월 30일에는 부활절 기념 복음 성가제, 4월 1일에는 부활절 성가 합창제와 한국교회 지도자 초청 민족화합 회개기도회, 4월 2일에는 십자가 대행진, 4월 3일에는 부활절 전야 철야 기 도회, 4월 4일에는 부활절 식전 행사로 교역자 신학생 기독청년대학생들의 회개기도회, 부활절 연합예배 등의 순서로 짜여 있는 프로그램을 보면 그것 을 알 수 있다. 특히 십자가 대행진 행사에서는 서울 시청 앞에서 빌라도 법 정 재현 연극이 공연되고 남산을 골 고다로 가정하고 십자가를 지고 행진한 후 식물원 분수대 밑에서 십자가 형 재현을 하는 것으로 짜여져 있다. 언뜻 보면 외국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우리 나라에서도 십자가 행진을 한 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내면을 보면 과연 누구를 위해 그처럼 엄청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지 그 저의를 알 수 없다. 한국 교계에서 내노라 하는 유명 인사들이 총동원 된 이번 행사는 말 그대로 기독교의 최 대 행사일 수 있다. 불신자들에게 기독교의 힘을 과시하는 기회 일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는 자리가 화려한 부활절 행사로 대치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더욱이 유명 인사들의 얼굴이나 내세우는 행사라면 더 욱 그렇다. 참으로 부활절 이른 아침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마리아처럼 벅찬 감격으로 한 평생을 살아가는 신실한 성도가 이 땅에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그들에게 진정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는 복이 있기를 기원한다.
8 no image 교회조직에 관심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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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0 1999-03-01
광야의 소리 교회 조직에 관심가져야 우리 교단이 출범하던 때 제1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개혁) 선언문에서 는 교단의 개혁과 화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장로교 정치 원리인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개혁 총회를 소집한다고 밝히고 있 다. 이 선언은 우리 교단의 정치 체제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헌법 제1부 총론 제3장 체제선언 제5항에서는 장로회 정치 체제에 대해 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이 정치는 지교회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서 장로를 선택하여 당 회를 조직하고, 그 당회로 하여금 치리의 사역을 하게 하는 정치이다. 그러 므로 장로회 정치는 그 기본권이 교인들에게 있는 신본주의적 공화정치이다. 당회는 치리의 사역으로 교회를 섬기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되어 성경 말씀 대로 지교회를 봉사하며, 보다 넓은 치리회(노회, 총회)와 함께 교회의 평화 와 성결을 파수하며 또 증진시키는 데 수종든다." 이 체제 선언에 따르면 우리 교단은 장로정치를 표명하고 신본주의적 공 화정치를 추구한다. 그렇다면 교회가 설립됨에 있어 무엇보다도 당회가 우선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당회가 조직된 교회를 조직 교회라 하고, 당회가 조직되어 있지 않은 교회를 미조직교회라고 구분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조 직 교회가 3교회 이상 되어야 노회를 조직하고 총회에 총대를 파송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것은 지교회, 노회, 총회를 경영함에 있어 당회가 가장 기초적인 조직 체라는 점을 매우 중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마디로 말해 당회가 없이는 지교회나 노회나 총회가 서 있을 기반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회 와 총회는 지교회의 설립과 함께 당회의 조직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 다. 그만큼 당회는 장로교 정치 체제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교단이 출범한지 어언 2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개혁 교단이 한국 교계에서 한갖 군소교단으로 취급받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개 혁정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 교단은 한국 교계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타 교단보다 명확한 정치 체제를 바탕으로 개혁 이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경영하신다. 목사 혼자서 교회를 경영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통해 장로를 선출하게 하시고 당회 를 조직하여 교회를 치리하도록 하는 신정정치를 펼쳐나가신다. 이 과정에서 지교회 목사는 당회의 협조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이제 달포 남짓 후면 각 노회별로 정기노회를 개최하게 된다. 노회는 위 내용을 상기하여 미조직 교회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교단의 정치적 근간이 되는 당회 조직에 있어 미온 적이라면 개혁 이념 조차도 머지않아 무너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부 터 우리 교단 내에서 일부 목회자가 자유정치나 조합정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우려섞인 목소리를 노회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7 no image 선후배간의 벽 허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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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6 1999-03-01
광야의 소리 선후배간의 벽 허물어야 사람들이 사는 사회 어느 곳을 가든 선후배간의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 갈등의 골은 쉽게 메워지지도 않는다. 요즘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후배 들이 실력은 있는데 인격이 모자란다는 선배들의 견해이다. 그 근거로 후배 목회자들이 대체로 선배 목회자들에게 불경스럽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학원 에서 이론에 치우치다 보니 목회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적응하는 능력이 결여된다는 지적이 그렇다. 아무래도 패기에 가득한 후배들을 보는 노련한 선배의 눈에는 그들이 무 모하게 비치기 쉬울 것이다. 또한 권위를 앞세우는 선배들은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고자 하고자 하는 후배의 눈에는 도전의 대상으로 보이기 마련일 것 이다. 그러나 이 두 요소는 상치되거나 상극이 아니다. 어쩌면 상호 보완해 야 하는 필요 충분 조건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후배 목회자들에 대한 평가에 앞에 과연 목회 현장엔 문 제가 없는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일방적으로 후배들의 인격만을 타매 하는 것은 문제의 실상을 보지 않으려는 저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의 본질은 이렇다. 선배는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후배는 기 득권을 타파하고 실력을 앞세워 학원에서 연마한 이념을 목회 현장에서 성 취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선후배간의 긴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선배들은 후배들의 도전에 대하여 정론과 실력으로 상대하기 보다는 감정이 앞서게 될 때 후배들의 정당성보다는 인격성을 문제시하기 쉬운 것이다. 반면에 후배들에게도 문제점이 없는가 살펴보아야 한다. 개혁(reformed)은 말 그대로 새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새 옷을 갈아입기 위해선 시간과 에너 지가 필요한 법이다. 자연스럽게 허물을 벗고 새 옷을 입는 과정이 상당히 중요한 개혁의 요소이다. 목회 현장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정신은 높이 사야 한다. 그러나 급진적인 변혁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자기의 열정을 앞세워 선배들의 개혁 정신을 미온적이 라고 밀어붙인다는 것은 결코 정당하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점을 앞에 두고 먼저 확인해야 할 명 제가 있다. 그것 은 우리들이 추구하는 사상이 바른 개혁 정신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우 리 교단이 추구하는 개혁 정신에 피차 동의한다면 그 열정보다는 동지라는 일체성(unity)을 높이 사야 할 것이다. 3대 개혁 이념에 따라 교회들이 점차 개선되고 개혁되어 가는 것이 우리 교단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선배는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후배들에게 인 격적인 본을 보여야 한다. 후배 또한 무모하게 실력이나 원론을 앞세우기보 다는 선배들의 장단점을 충분히 지켜보면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 하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선후배간의 화합이야말로 개혁의 에너지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6 no image 감정만 있고 이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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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1 1999-03-01
광야의 소리 감정만 있고 이성은 없다. 최근 일어난 대전 법조 비리 사건으로 불거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크게 일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검찰이 거듭날 기회로 삼아 야 한다는 소장 검사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법조 비리 사건은 법조계의 비리를 척결하지 못 하고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 조사를 받고 있던 모 고검장은 검찰이 정치의 시녀에 불과하다고 힐난하고 나섰다. 초유의 항 명 파동이라고 불리어진 그의 성명서는 정권이 바뀌어도 검찰은 변하지 않 는다고 꼬집고 있다. 이번 기회를 검찰의 중립성을 확보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소장 검사들의 파문 역시 3월에 있을 인사 이동과 연관되어 사그라 지고 마는 느낌이 든다. 한편 지난 1월 21일부터 31일까지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1999 년 선댄스 영화제는 한 사람의 동양 여성에 의해 발칵 뒤집어졌었다. 고프 루이스 감독이 출품한 다큐멘타리 '섹스, 애너벨 청 이야 기'의 주인공인 그녀 가 바로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이 영화는 엄격한 통제 사회인 싱가포르 에서 엘리트로 성장한 그녀의 삶과 나이 스물에 미국에서 포르노 배우로 변 신한 그녀의 삶을 극단적으로 대조시키고 있다. 심지어 10시간 동안에 무려 251명의 남성과 정사를 가진 퍼포먼스는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였다. 그 녀는 이러한 행동을 통해 "사회의 위선을 통째로 뒤집고 싶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한일어협협정이 타결되지 않아 황금 어장을 눈앞에 두 고도 어부들이 출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일로 한일 양국 어선단들이 하 루에도 수천만, 수억 원의 손해를 그대로 감수하고 있다. 또 다른 곳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어린이들이 단돈 몇백 원어치의 음식을 먹지 못해 죽어 가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사건들의 내면을 보면 한결같이 명 분 싸움이 그 안에 숨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법조 비리는 법조 비리대로 해결하고, 정치 검찰 문제는 그 책임을 질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해결하고, 검찰 독립은 그 관계 법령을 개정하는 당국이 나서 해결해야 한다. 그 와중 에 서로를 물고 놓지 않는 것은 바른 해법보다는 자신의 명분을 앞세우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에너벨 청이 제시한 사회의 위선에 대한 저항은 단순히 개인의 감정을 앞세워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거치며 정치라는 수단을 통해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것 이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 조악을 기이한 행동으로 파헤쳐보겠다고 나서는 것 역시 자기의 명분을 앞 세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지금 유명 스타가 되어 최고의 주가를 누리 고 있다. 이 모두가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선 사람들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폄하가 될지도 모른다. 이 모든 문제들이 돈만 있다면 해결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사실 돈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명분을 앞세우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교회는 침묵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슨 명분 때문에 침묵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5 no image 법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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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6 1999-02-01
광야의 소리 법의 정신과 질서 법(法)이란 의미는 말 그대로 물(水) 의 흐름(去)을 지시한다. 물의 흐름이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자연스 럽게 흘러가는 것이 곧 법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법은 자연스러워야 한 다. 억지가 없고 역기능이 최소화되어야 한다. 법으로 인해 오히려 부작용이 더 많다면 그 법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이것과 연관하여 발생한 말 중 에 자연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자연 법칙에선 역기능(逆機能)을 기준으로 하지 않는다. 순기능(順機能)의 법칙을 따라 자연계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만일 낮은 곳의 물을 높 은 곳으로 되돌리려면 상당한 에너지를 외부로부터 공급해야 한다. 반면에 높은 곳의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를 때의 낙차를 이용하면 상당한 양의 에너지 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상관 관계를 잘 이용하면 그만큼 유익을 얻게 된 다. 이러한 법칙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법칙이라 고 한다. 반면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법칙이 변하 거나 시시각각 변한다면 자 연계는 혼란에 빠지거나 도탄에 이를 수밖에 없다. 자연법과는 달리 인간 사회의 법은 나름대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발생했다. 그리고 법을 제정함에 있어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최소한의 규정을 기준으로 삼 고 있다. 그 기준의 산정에 따라 다소 법의 제재가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 로 그 시대나 사회에서 유통하고 있는 상식의 최저선을 기준 하여 법으로 규 정하는 것이다. 즉 상식 밖의 행동을 제한하여 그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은 고도한 인간 사회를 건설하기 위 한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이상 저급한 사회로 전락하지 않 도록 하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법정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준법정신은 그 사회가 요구하는 최하한선인 것이다. 그것이 최상의 인간상 을 의미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느 시대건 법의 조항이 많으면 많 을수록 그 사회는 저급한 사회가 되고 만다. 반면에 법 조항이 적으면 적을 수록 그 사회는 그만큼 상식이 통용되고 질서가 유지되는 고도한 사회가 되 는 것이다. 옛 사사 시대의 법이 그랬다. 십계명을 기초로 한 260여개 항 목이 그 시대를 지지할 뿐이다. 그래서 십계명은 인류사에서 보기 드문 최상 의 법인 것이다. 얼마 전에 마친 총회에서 총무 인선 문제로 신 임원들이 진통을 겪었다. 신 임원회에서 총무를 선정해 총회에 상정함에 있어 원만하 게 해결해 보고자 한 일이 오히려 문제를 야기시킨 도화선이 되었던 것이다. 임원들의 고충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진통 역시 총회 규칙에서 규정 하고 있는 법정신을 우리 모두가 극복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법 위에 있다는 사 실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4 no image 개혁 교단의 위상을 새롭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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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2 1999-02-01
광야의 소리 개혁 교단의 위상을 새롭게 하자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개혁) 선언문에는 우리 교단의 정체(政體)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총회는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을 이념으로 하여 참신한 개혁주의 적 신앙 운동을 펴 나가기로 하고,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 자신의 개혁을 다짐하고, 또한 독선과 아집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우 리 총회의 입장과 진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는 바이다.?이상의 선언 과 함께 11개 조항에 걸쳐 총회 소집의 새 장을 열어 가고 있다. 그 중에서 오늘 우리가 재삼 숙고해야 할 제 5항 및 7항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5 항. "우리는 경건 생활에 주력하되 비성경적 행위인 지방색과 파벌의식을 타 파하며 교권 쟁취를 위하여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 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려고 기도, 전도, 봉사에 전력하는 교회상을 심 어 나가는데 힘쓰고 우리의 생활에서 신앙과 윤리가 겸전하며 하나님과 인 간에 대하여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한다.? 7항. "우리 는 분열의 상처와 아픔을 거울 삼아 자신의 정화와 개혁을 중심으로 하는 진 리 운동을 추진할 뿐 아니라 회개와 용서와 관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화목과 합동 운동을 펴 나아가는데 최선을 다한다.? 우리 교단은 지방색이 나 파벌의식 나아가 교권주의에 대하여 엄격하게 자중해 온 것이 사실이 다. 그 결과 타 교단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는 지방색이나 파벌의식, 교권주 의를 많이 찾아 볼 수 없었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한 분열의 상처를 입었던 과거를 청산하고 진리 운동 안에서 화목과 합동 운 동을 전개하여 온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는 모든 개혁주의 신앙고백 의 원리이자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어느 시대든 변치 않는 불변의 법 칙이다. 우리 교단에 속한 지교회들 중에서는 직, 간접적으로 타 교단 소 속의 교회들과 연합하여 다양한 기독교 단체에서 활동하는 교회들이 적지 않 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기독교학문연구회, 개혁신앙협회 등을 비롯하여 크 고 작은 단체 속에서 열렬히 활동하기도 한다. 이러한 단체 속에선 교단 소 속 문제는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 그리고 활동에 제약을 받지도 않는다. 그만큼 타 교단 소속 교회들과 연합 활동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이 점을 교단 정책에도 반영해야 할 것이다. 이미 많은 교회들이 교계 연합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반면에 교단 정책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 오히려 경직되어 있다는 인상마저 들게 한다. 차제에 우리 교단의 위상을 새롭게 하 기 위해서라도 건전한 기독교 단체들과 우호 협력하는 일에 우리 교단 지도 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교회들이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참여해야 할 것이다.
3 no image 어느 독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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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2 1999-01-30
광야의 소리 어느 독자에게 드리는 글 L형. 지난 여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잔인했습니다. 400여명의 인명이 손실되었고 14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수재의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 이었습니다. 재산상의 손실은 중앙재해대책본부가 집계한 통계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수재민과 국민들이 입은 정신적 피해감과 손실감이야 말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모든 재앙이 우리 국민과 교회들 저변에 깔려 있는 무사안일한 사고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경악을 금할 수 없습 니다. 중국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발생한 기상 이변과 재앙은 세기말에 정신 적, 도덕적, 종교적으로 헤이해진 인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기 위한 하나님 의 심판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 L형. 더 심각한 문제는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통으로 삼킨다는 말씀처 럼 인간 내면에 담긴 죄감(罪感)이 무디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곳곳에서 홍 수가 나고 산사태가 발생하고 하 루에도 수십명이 죽어가는 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의례히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구나 하고 담담히 넘겨버고 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미 대통령의 스켄들 사건도 자주 접하다 보니 사실을 해명하기 보다는 그렇고 그런 일인 것처럼 넘겨 버리게 됩니다. 그간 몇차레 발생한 폭탄 테 러 사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에 가슴 아 파하기 보다는 또 사건이 터졌구나 하는 정도에서 넘겨버리고 맙니다. 그만 큼 우리는 양심이 무디어진 세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태를 어떻 게 해석해야 할까요? 그러고 보니 L형이 지적한 말이 생각납니다. 기독교개혁신보가 과연 개혁 을 지향하는 자리에 서있는지 궁금하다는 우려 말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 을 빌리면 "이건 이름만 개혁 아니예요?粹遮?걱정에서 우러나온 충정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충고해주시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자부심과 아울러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기독교개혁신보는 이미 알고 계시듯 "바른 교회, 바른 신학, 바른 생활袖? 라는 개혁 정신에 입각해 편집되어집니다. 이에 걸맞도록 바른 교회관 정 립, 바른 신학에 대한 이해, 바른 생활을 향유하기 위한 문화관 재시 등 다 양한 형태의 편집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문은 신문으로서의 체제가 있기 때문에 신문이라는 모양새를 근거해야만 합니다. 이점은 L형 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체제와 내용의 긴장 관계에서 균형 감각을 어떻 게 유지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편집의 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문의 특성상 모든 기사를 독자들이 읽어주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독 자들의 취향에 따라 각기 읽고 공감하는 분야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문제 는 낙타를 통으로 삼키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편 집하는 이로서 늘 가슴으로부터 질문하는 고뇌임을 알아 주신다면 더욱 고 맙겠습니다. 그럼 L형이 주 안에서 더욱 강건하기를 기원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합니 다. 좋은 하루가 되세요.
2 no image 세기말 현상 악마주의 팽창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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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6 1999-01-01
광야의 소리 세기말 현상 '악마주의' 더 이상 팽창 막아야 얼마전 개봉된 방화 '여고 괴담'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어느 여학교에 서 일어날 수 있는 교사와 학생간의 갈등을 관객에게 던지고 관객의 심리적 갈등의 해결 실마리를 귀신이라는 허구를 통해 풀어 보고자 기획된 영화이 다. 모 TV방송사에서는 70년대 인기를 누렸던 '전설의 고향'을 현대적 촬영 기법을 동원하여 제작, 방영함으로 시청자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 여기에서 도 역시 귀신이 주인공 아닌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문제의 해결책으로 등장한다. 며칠전 모 시사 프로그램에선 영문 모를 병으로 시달리는 문제를 제기하 고 그 해결책으로 귀신을 등장시켰다. 이 프로그램에선 그런 병들은 인간의 다중인격과도 연결되며 사람 속에 귀신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병의 원인인 것처럼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귀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시중 에서 유명하다는 퇴마사(退魔士)와 화가를 동원하여 귀신의 몽타주를 그려내 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 악마의 가공할 위력을 보여주는 새 영화 '스폰'이 개봉된 다. 정부의 비밀 암살 요원이 상사의 계략으로 죽음을 당하지만 사랑하는 여 인을 보기 위해 악의 제왕과 영혼을 거래하고 지옥의 군대를 이끌 전사(戰 士) '스폰'으로 부활해 복수한다는 헐리우드식 영화이다. 최첨단의 컴퓨터 를 동원하여 현란한 특수 효과와 자극적인 색채, 세기말의 음산한 무드, 헤 비메탈과 테크노 음악을 무기로 세계를 겨냥하고 나선 것이다. 이 영화 역 시 사랑과 분노 사이에서 갈등하는 정신 분열적 존재인 인간의 내면 문제를 악마의 힘을 빌어 해결해 보고자 시도하고 있다. 그 밖에도 귀신이나 악마를 등장시켜 문제를 일으키고 해결하는 식의 소 설이나 영화는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세기말인 요즘에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런 류의 악마주의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악마는 늘 정의 앞에서 힘을 잃고 무너진다. 그러나 악마는 어떤 형태의 모습을 띠고 또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자신의 존재를 지능적으로 인간에 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악마 숭배를 위한 음악도 공공 연하게 연주 되고 있다. 인간이 존재하는 어느 곳에서든지 악마는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 을 침투(浸透)시키고 드러내고 있다. 반면에 대부분 교회는 사탄의 정체나 그 휘하에 있는 귀신들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적을 알지 못하고선 자신의 능력을 드러낼 수 없다. 차제에 사탄과 그 조직의 정체에 대해서 그리고 악마주의가 팽창하지 못하도록 교 회가 나서 연구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1 no image 재난은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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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1 1998-12-15
광야의 소리 재난은 어디에서 오는가? 최근 서울에 내린 880여 미리의 집중 호우는 1년 평균 강수량의 3분의 2 에 해당한다고 한다. 서울뿐 아니라 경기, 강원, 충청 지방에도 급작스런 집 중 호우로 25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고 경제적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 다. 이 달 초 지리산에서 발생한 집중호우로 발생한 100여명의 사상자까지 합하면 결코 적지 않은 인명 손실을 입은 것이다. 기상청은 중국 양쯔강에서 발생한 저기압이 이번 기상 이변의 주범이었 다고 밝히고 있다. 편서풍의 영향으로 양쯔강 저기압이 한반도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엘니뇨의 세력이 약해지고 라니냐의 세력이 급작스럽 게 팽창하여 적도 근방의 무역풍이 중국 내륙에 막대한 습기를 공급해 더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기상 이변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몇 년전부터 세계 각처에서 기상 이 변이 발생하여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학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다. 화석 연료의 대량 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탄산가스가 지구를 뒤덮고 있어 마치 온실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다. 이로 인해 남극의 커다란 빙산이 녹아 내리거나 붕괴되고 있다고 한다. 둘째, 티벳 고원의 상승 현상이다. 티벳 고원이 해발 3000미터 이상 치솟 아 있어 지상 기류에 영향을 미쳐 기상 이변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 금도 티벳 고원이 계속 솟아오르고 있어 앞으로도 기상 이변은 지속될 전망 이다. 그러나 이런 재앙을 단순히 기상 이변으로 돌려버리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성경은 기상 이변으로 인해 발생한 기근이나 홍수 배후에 인간의 죄가 숨겨져 있음을 명확하게 밝혀 주고 있다. 최초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아 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로는 가시덤불과 싸워야 채소를 경작할 수 있었다. 인간친화적인 환경이 인간배척의 환경으로 바뀐 것은 바로 죄가 인간 세상에 들어서면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죄있는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 세상 어느 곳, 어느 시대나 자연의 재앙은 끊임없이 발생해 왔던 것이다. 그렇다. 기상 이변은 하나 님의 심판이 지금도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재앙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을 면제받은 것은 결코 아 니다. 더욱이 그들보다 죄가 없거나 의롭기 때문에 재앙을 당하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우리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잠시 유예되어 있을 뿐이다. 앞으로도 죄있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자연 재앙이라는 형 태뿐 아니라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 려 "차라리 그 때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탄하는 절규가 우리 입에서 튀어나오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이유로 죽은 자 들보다 나을지 모른다는 착각은 금물이다. 단, 죽은 자들보다 산 자가 나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 그것은 하나 님 앞에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이다. 심판이 유보되었다 는 것은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이 점을 한국교회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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