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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no image 교회 안에 들어온 계급제도_송영찬 국장 (189)
편집부
3985 2013-02-22
교회 안에 들어온 계급제도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교회 역사는 교회에 대한 마귀의 투쟁에 대한 하나의 긴 서술이다. 그러나 또한 교회 역사는 계속해서 교회를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돌려 놓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찬양의 노래이기도 하다. 때때로 마치 마귀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때 배교가 시작되고 확장된다. 마치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버리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님의 백성들은 불신실하고 무서운 죄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왕께서는 결코 당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 교회 역사는 이런 사실로 가득하다. 교회의 역사 속에서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무서운 이단이 교회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그것은 교회의 직분자들이 자신을 신자들, 즉 신도들 위에 두는 것이었다. 그리고 갈수록 그 틈은 더욱 벌어지게 되었다. 본래 교회에서는 말씀 사역자인 목사, 교회의 치리를 위한 장로들, 긍휼의 사역을 위한 집사들과 같이 세 개의 직분이 있었다. 교회 안에서 이 세 직분을 맡은 자들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는 도구들이었다. 실제로, 이 세 직분자들은 그리스도의 종들이고, 그리스도의 ‘입’(mouth)이었다(고후 5:20, 21). 처음에 사도들은 장로들과 집사들과 함께 사역했다. 장로들(elders)은 후에 장로들(presbyters)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미 2세기에 교회정치는 소위 감독(bishop)이라고 불리는 장로들(presbyters)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때 감독들은 사도들의 계승자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집사들은 점점 감독을 돕는 자가 되었다. 집사는 감독의 ‘귀, 입, 마음, 영혼’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교회 안에 더 중요한 직분과 덜 중요한 직분이라는 구별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후 ‘누가 더 중요한 감독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곧 큰 도시의 감독이 더 중요한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교회 모임이 열렸을 때 큰 도시의 감독이 그 모임의 의장이 되었다. 이 감독을 ‘대감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교회의 직분자들 사이에 계급이 만들어지고 그들은 교회를 섬기는 일보다는 교회를 지배하는 것에 더 많은 매혹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직분의 계급화는 교회를 허무는 이단과 다를 바 없다.
410 no image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_송영찬 국장 (120)
편집부
5724 2013-02-05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어거스틴(Auguestine, 354-430)의 위대한 중요성은 펠라기우스(Pelagius, 360?-420)라는 이단자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찾을 수 있다. 주님은 어거스틴을 이 일을 위해 사용하셨다. 펠라기우스는 400년 이래로 로마에서 사역한 영국 수도사였다. 이 이단자는 사람이 전적으로 타락하지 않았고 자신의 자유 의지로 자기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가르쳤다. 실제로 이 가르침은 교회를 반박하고 위협하는 이교적 사상이다. 만일 사람이 스스로 구원을 획득할 수 있다면, 그때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거스틴은 성경이 전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을 제시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전적으로 타락했다. 이 이단에 반대하여 그는 자기 자신의 삶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제시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는 하나님 말씀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펠라기우스는 자기의 이단설을 보급하기 위하여 북 아프리카로 갔다. 그는 어거스틴을 맹렬한 대적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 어거스틴을 사용하여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닫히려는 교회를 방어하고 지키는 사역을 실행하셨다. 마침내 418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은 정죄를 받았다. 교회에 의한 펠라기우스주의에 대한 정죄에도 불구하고, 중세 로마가톨릭교회는 계속해서 일종의 반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에 밀착되어 있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뜻을 통하여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16세기 종교개혁에서 루터와 칼빈은 어거스틴이 성경에 따라 가르쳤던 ‘자유로운 은혜’의 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벨직신앙고백 제14항과 15항). 우리는 오늘도 동일한 투쟁을 하고 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맡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결코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을 뿐이다.
409 no image 교회의 분열과 교회의 일치_송영찬 국장 (20)
편집부
2834 2013-01-22
교회의 분열과 교회의 일치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니케아 신경(Nicene Creed)이 채택됨으로써 예수님은 반신(semi-god)이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가르친 이단 아리우스(Arius)의 주장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교회의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문제는 로마의 감독이 전 세계 교회를 지배하겠다고 나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로마에 있는 교회가 다른 교회들을 지배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로마의 감독은 자신을 ‘베드로의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자신이 자기 뜻을 다른 교회들에게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이스탄불이라고 불리는 지역인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 이 명령을 거부했기 때문에, 교회들 사이의 일치 관계가 깨어졌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권세와 권위에 복종하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부터 사단이 얼마나 교활하게 일하는지를 볼 수 있다. 사단은 불일치의 씨를 뿌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단들의 연합 운동이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 교단보다는 많은 교단들이 연합하면 그만큼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매우 편리한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러나 진정한 교회의 일치는 교단들이 연합해서 어떤 운동을 하는 것과 그 형식과 내용에서 전혀 다르다. 교회의 일치는 전적으로 신학의 일치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치는 교단의 연합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다양한 견해의 신학들을 서로 양보하고 어떤 목적을 위해 교단들이 연합하는 것은 말 그대로 교단들 사이의 연합이다. 이 관계는 언제든지 추구하는 이해관계가 달라지면 서로 분열의 길을 가게 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라든지 한국교회연합회가 그런 관계이다. 반면에 한 교단과 다른 한 교단이 합동하는 것은 교회의 연합이 아니라 교회의 일치이다. 때문에 여기에는 각 교단의 기구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 각 교단의 신학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을 뿐이다. 서로의 신앙고백이 일치하지 않는 정치적 연대는 언젠가 이해관계가 달라질 때 또 다른 분열을 가져올 뿐이다.
408 no image 아리우스 이단과 니케아 신경_송영찬 국장 (1)
편집부
3450 2013-01-08
아리우스 이단과 니케아 신경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아리우스(Arius)는 주 예수께서 일종의 반신(semi-god)이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가르친 이단이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바우칼리스(Baucclis) 교회의 수도원 사제였으며 그리스도가 하나님과는 다른 본성을 가지고 창조된 피조물이라고 주장했다. 콘스탄틴 황제는 325년에 보편 교회의 모임인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했다. 이 이단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가운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사람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였다. 그리스도는 영생하시며 하나님과 동일한 본성을 가진 분이라고 아타나시우스가 주장했다. 아나타시우스는 하나님의 참된 말씀에 따른 교리 안에서 교회를 순수하게 파수하기 위해 헌신했다. 니케아 공의회는 아타나시우스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아리우스를 정죄했다. 그리고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니케아 신경(Nicene Creed)이 채택되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니케아 신경(Nicene Creed)> “우리는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인 천지의 창조주,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분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만세 전에 아버지로부터 나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믿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하나님이시며, 빛으로부터 나신 빛이시고,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참 하나님이시고, 나시었고, 창조함을 받지 아니하셨으며, 아버지와 같은 본성을 가지셨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되었고, 그분은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또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육신이 되시고, 사람이 되셨으며,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시어, 아버지 오른 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은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을 심판하시러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이며, 그분의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주님이시며 수여자이신, 성령을 믿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시었고,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거룩한 공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위한 한 세례를 인정합니다. 우리는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오는 세상의 생명을 고대합니다. 아멘”
407 no image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_송영찬 국장 (237)
편집부
19080 2012-12-26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교회가 공식 국가교회가 된 것은 콘스탄틴(Constantine, AD 311-337)이 죽은 지 50년 후였다. 콘스탄틴이 죽자 줄리안(Julian, AD 361-364)은 기독교를 억압하려 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했다. 그리스도인들을 대항하는 일이라면 욕설, 조롱, 폭력과 같은 것들을 다 허용했다. 그러나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AD 408-450)는 통치 2년에 기독교를 공식적인 국가 종교의 위치로 올려놓았다. 삼위일체를 믿는 것은 의무가 되었다. 이교도들은 재판을 받았고 이방신전들은 파괴되거나 교회당으로 전환되었다.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교회의 회원이 되었다. 이 교회 회원권이 없으면 승진할 가능성도 없었다. 만일 승진을 바란다면 더 이상 황제에게 희생제사를 드리는 대신 세례를 받아야 했다. 새로운 회원들이 교회에 날마다 연합했다. 짐작하겠지만 많은 경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형식에 불과했다. 교회가 국가교회가 되자 그만큼 더 세속화 되어간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더하여 국가는 교회의 일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교회의 예배는 종종 비싼 옷, 향, 천사들과 마리아와 같은 형상들, 유품들로 아름답고 화려한 ‘멋진 구경거리’가 되었다. 이로써 첫 박해 기간의 강한 믿음은 거의 사라졌다. 이 기간은 종종 ‘기독교의 타락’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기독교가 국가교회로 되면서 이런 어두운 면 외에도 밝은 면도 있었다. 외적인 보호와 안전은 신학 연구를 풍성하게 했다. 이전에 시간의 결핍으로 해결하지 못했던 수많은 문제들이 연구되었다. 그리고 점점 큰 모임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사회 전체가 복음 설교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이 기간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와 어거스틴(Augustine) 같은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설교와 그리스도인의 교리의 순수성을 위하여 투쟁했다. 그러나 국가교회는 정작 기독교의 신앙을 혐오스럽게 만들고 말았다. 황제는 최고의 재판관이요 법의 수여자로서 교회의 머리라 자처하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 대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은 직분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여 다스리시기 때문이다(엡 5:23). 이제 새해가 시작되었다. 왕이신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교회가 없기를 바란다. 모든 권세와 영광은 그리스도께 돌려야 한다. 그럴 때 교회는 진정한 평화와 위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406 no image 종교의 자유 속에서 타락으로 빠진 교회들_송영찬 국장 (24)
편집부
3064 2012-12-11
종교의 자유 속에서 타락으로 빠진 교회들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로마의 황제 콘스탄틴(Constantine, AD 311-337)의 보호아래 교회는 박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바로 그 이전까지 교회는 많은 박해를 받아야 했다. 심지어 많은 신자들이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로마 황제가 박해받던 교회로부터 오히려 보호와 지지를 구하게 되었다. AD 313년에 로마의 합법적인 종교로서 기독교가 인정을 받음으로써 AD 392년에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는 길을 열어놓았다. 콘스탄틴 황제는 교회를 위해서 많은 일을 했다. 콘스탄틴은 아프리카에 있는 성직자들을 위하여 십오만 달러를 하사했다. 그리고 모든 곳에 장엄한 교회들을 세웠다. 이전에 박해를 경험했던 나이든 신자들은 이런 일들을 보고서도 그 영문을 몰랐다. 그러나 이교도들은 여전히 콘스탄틴 치하에서 관용을 받고 있었다. 때문에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옹호했다고 말할 때에는 주의를 해야 한다. 그는 동전의 한 면에는 그리스도라는 말을 새기고, 다른 한 면에는 태양신의 형상을 새겼다. 소위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해서 점차 교회의 절기로 만들어졌다. 그는 로마 백성들에게 주일을 지키도록 하느라 바빴지만 정작 자신은 거의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다. 콘스탄틴이 교회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주로 교회의 외적인 광채를 증진시킨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 헬레나(Helena) 역시 교회 안에서 깊은 타락을 조장했다. 헬레나는 이른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발굴해내라고 명령했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손톱들까지도 복구되었다. 헬레나는 이런 물건들을 경배하고 찬양했다. 콘스탄틴이 화려한 행렬과 예식으로 영접한 감독들 앞에서 세례를 받겠다고 스스로 허락한 것은 생의 마지막이 다 되었을 때였다. 콘스탄틴이 얼마나 진지하게 신자가 되고자 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판단할 수 없다. 단지 교회는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에 의해 유지될 뿐이다. 이제 성탄절이 다가 온다. 온갖 화려하게 꾸민 크리스마스 장식 속에서 타락한 교회의 모습을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콘스탄틴 시대처럼 화려한 교회의 장식 뒤에는 결코 예수님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명심해야 한다.
405 no image 박해를 견디고 자유를 얻은 교회_송영찬 국장 (1)
편집부
2629 2012-11-27
박해를 견디고 자유를 얻은 교회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처음 3세기동안 로마의 황제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짓밟는 일들을 했을지라도 교회를 괴멸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던 가운데 로마 제국의 권력 투쟁에서 콘스탄틴(Constantine)이 승리자가 되어 황제가 되었다. 황제가 된 콘스탄틴은 313년에 그 유명한 ‘밀란 칙령’을 반포했다. 이 칙령은 로마 제국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선언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동안 빼앗긴 재산을 돌려받거나 보상을 받도록 조치했다. 이것은 교회 역사에 있어서 전적으로 새로운 결정이었다. 공식적인 자유는 그때까지 신약교회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렇게 한 것은 그동안의 박해들이 기대만큼 효과가 없다는 것을 콘스탄틴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콘스탄틴은 국가의 일치를 확보하기 위해서 무적의 교회를 사용하기를 원했다. “만일 교회를 쳐부술 수 없다면, 교회와 연합하라. 이것이 네 자리를 견고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이 콘스탄틴이 교회에 대한 교활한 생각이었다. 콘스탄틴은 후에 자신이 경험했다고 알려진 이야기를 남긴 바 있다. 황제 자리를 두고 투쟁하는 가운데서 그의 적대자들 중에 한 사람은 막센티우스(Maxentius)였다. 결정적인 전투를 하기 전날 밤에 콘스탄틴은 십자가 형상에서 승리의 표를 보았고 태양이 그 위로 높이 떠올랐는데 그 아래에는 “이 표적으로 승리하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에 콘스탄틴은 이 표적에 관한 이야기를 병사들에게 해 주었다. 그리고 숙련공들에게 이 표적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나중에 이 표적은 동전과 투구에도 새겨졌다. 이 표적을 앞세운 콘스탄틴은 티베르(Tiber) 강에서 막센티우스를 무찌르고 승리를 얻었다.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단지 분명한 것은 교회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콘스탄틴을 사용하여 당신의 자녀들에게 처음 3세기 동안의 박해 후에 자유를 얻게 해 주셨다는 것이다. 콘스탄틴의 개종은 물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것처럼 왕들의 마음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때로 하나님은 세상의 강력한 황제일지라도 원하는 대로 사용하시는 분이시다(잠 21:1). 그 하나님은 우주의 주권자이시다.
404 no image 박해속에서도 성장하는 교회_송영찬 국장 (273)
편집부
16598 2012-11-13
박해속에서도 성장하는 교회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초대교회 3세기 동안 교회는 박해를 받았다. 이 기간은 확실히 ‘십자가 아래 있는 교회’였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첫 세기 동안에 로마의 잔인한 네로의 통치 기간에 매우 고통스러운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그 박해 가운데서 교회는 활발하게 성장했다. 이 성장은 대규모 선교 사역의 결과가 아니라 주로 ‘십자가 아래’에 있는 신자들의 생활 방식으로 인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면류관을 얻었던 그 용기는 깊은 감동을 주었고, 그 감동은 종종 개종으로 이어졌다. 이런 방식으로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성장하는 교회는 이후의 로마 황제들에게 점점 더 큰 문제가 되었다. 당시 광대한 로마제국은 일치를 최우선으로 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 안에 있는 또 다른 국가는 로마 제국에게 매우 큰 위험으로 보였다. 바로 교회가 그렇다. 왜냐하면 교회는 자기 자신의 방식대로 가기 때문이다. 교회는 많은 다른 종교들 중의 하나로 간주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배를 받으셔야 하는 한 분 참 하나님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주후 250-300년에, 특별히 신자들이 로마제국의 일치를 위협한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파멸시키려고 한 세 황제들이 있었다. 신자들이 어떻게 황제의 제단에 제물로 드려졌는지 역사가 기억하고 있다. 많은 신자들이 분향의 제사로 드려짐에 있어서 매우 악랄한 일들이 자행되었다. 데키우스(Decius), 발레리안(Valerian), 디오클레티안(Diocletian)의 통치 아래에서 많은 신자들은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란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했다”(히 11:37-38). 신자들은 로마 제국의 일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런 핍박을 받아야 했다. 비록 디오클레티안 황제가 신자들의 신앙을 짓밟는 모든 일을 행했을지라도 그는 임종시에 자신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가 쏜 모든 맹렬한 화살들은 믿음의 방패에 의해서 소멸되었다. 이처럼 교회는 세상의 박해 가운데서도 소멸하지 않고 성장한다. 왜냐하면 그때 신자들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 시대의 교회들은 ‘십자가 아래’에 있는가?
403 no image 성령은사주의 이단 몬타누스주의Montanism_송영찬 국장 (1)
편집부
3196 2012-10-30
성령은사주의 이단 몬타누스주의Montanism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신구약 66권의 정경은 성령님의 인도 아래에서 교회의 신앙을 보존하고 성경 계시의 종결성을 보증하기 위해 교회에 주어졌다. 신구약 정경성에 도전했던 말시온 이후 교회는 몬타누스로 말미암아 또 다른 고통을 당했다. 이 거짓 교사 몬타누스는 성령님의 은사에 지나친 강조를 두고 있었다. 구약과 신약 시대 사이에는 일종의 ‘전환기’가 있었다. 즉 오순절 날에 구약이 종료되고 난 후에 신약의 책들이 기록되어야 했다. 이 일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 ‘전환기’에 교회는 마치 건물의 구조물을 지탱하는 거푸집과 동일한 방식으로 유지되었다. 이 한정된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병고침과 방언과 같은 성령님의 특별한 은사들을 교회에 사용하셨다. 그러나 신약 성경이 완성되었을 때, 이 특별한 은사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기 위해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거푸집’은 제거되어야 했다. 몬타누스는 이 특별한 성령님의 은사들이 거두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주후 150년경에 일종의 ‘성령 운동’을 일으켰다. 당시 몬타누스의 생각에 교회는 참으로 지루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직분들이 정해져 있었고 모든 것이 조직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회의 직분과 조직에 반대하여 몬타누스는 자신이 성령님과 함께 돌아왔다고 하면서 지금도 병고침과 방언과 같은 특별한 성령의 은사가 있다고 주장했다. 몬타누스주의 이단을 상대하여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특별 계시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신약 성경은 이미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특별한 현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교회는 구약과 신약으로 알려진 하나님 말씀의 권위 앞에 복종해야 합니다.” 이런 가르침은 소위 성령은사주의를 추종하던 몬타누스주의 이단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정경은 완성되었다. 계속되는 계시도 없고, 계속되는 영감도 없다. 우리 주님께서는 신자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규칙과 규범으로 삼는 정경으로 신구약 66권만을 주셨다.
402 no image 성경의 정경성에 도전한 이단 말시온Marcion_송영찬 국장 (1)
편집부
3186 2012-10-16
성경의 정경성에 도전한 이단 말시온Marcion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흑해주변에서 살던 말시온은 주후 138년경에 로마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교회에 출석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들은 교회에 의해 거부되었다. 그는 스스로 교회의 출교를 받아들였다. 활동적인 말시온은 조직을 세우는데 능숙했다. 말시온은 곧바로 새로운 교회를 세웠다. 수십 년 후에 말시온이 세운 교회는 기독교회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확장되었다. 말시온은 창조주 하나님에 관해 말씀하고 있는 구약을 거부했다. 말시온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구약의 하나님이 비록 악하지 않을지라도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하나님보다 열등하고 선을 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하나님은 의롭게 되라고 요구하셨지만 잔인하시다. 이 하나님은 선한 의도로 세상에게 율법을 주셨지만 율법에 대항하는 모든 죄에 대해 무거운 심판을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은 자비가 없으신 심판자이시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님은 그런 구약의 잔인한 하나님의 아들일 수 없다. 이 예수님은 알려지지 않은 신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 비록 이 신이 세상의 창조와 관련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지라도, 이 신은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신은 그 잔인한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보냈다.” 이 이단자 말시온은 율법(구약)과 복음(신약) 사이, 즉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에 독특한 구분을 만들었다. 말시온은 자신이 바울 서신에서 율법과 복음 사이의 이런 대조의 희미한 빛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말시온은 바울 서신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바울의 눈으로 볼 때 구약과 신약에 대조나 구별이 없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시다. 말시온의 의도는 자신이 만든 정경을 내세우기 위함이었다. 말시온은 자기가 직접 성경을 편집했다. 그리고 구약을 빼고 성경을 제작했다. 또한 말시온은 사복음서 중에 오직 누가복음만 인정했다. 그 이유는 누가복음이 다른 복음서들보다 바울의 저작들과 가장 일치하기 때이었다. 나아가 말시온은 바울의 열 서신만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말시온은 신구약 66권의 정경성을 부인한 첫 번째 이단이었다.
401 no image 사탄의 도구가 된 교황제도_송영찬 국장 (194)
편집부
7136 2012-09-28
사탄의 도구가 된 교황제도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만일 계급제도가 교회를 장악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되는가를 알고 싶다면 로마천주교의 계급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로마 천주교에서 교황의 명령은 보통 사람들, 즉 단순히 그 명령을 실행해야 하는 모든 신도들에게 전달되기 마련이다. 이런 제도는 사탄이 교회를 아주 쉽게 무너뜨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곧 사탄이 한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다면 그는 모든 사람들을 다스릴 권세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로마천주교의 교황제도는 실제로 역사 속에서 사단의 손 안에 들린 치명적이며 위험스러운 무기가 되고 말았다. 이 제도로 말미암은 최악의 상황은 교황이 왕이신 그리스도의 왕좌를 찬탈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분명한 규칙들이 지켜지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분명한 규칙들이 있는 교회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직분자들인 목사와 장로와 집사들을 통하여 다스리시는 교회의 왕으로 통치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3:8).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엡 4:15,16; 5:23). 그러나 교황이 교회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교회는 부패하게 되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미사가 주의 만찬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들은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떡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고 포도주가 정말로 그리스도의 피로 변한다고 믿게 되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단번의 희생제사의 충분성을 부인하면서 그들은 매일 그리스도를 희생제사로 다시 드려지게 하는 패역을 저지르고 말았다. 교황제도 아래에서 그들은 마리아를 우상으로 만들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 하늘의 여왕, 중재자,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중보자로 불리게 되었다. 또 마리아는 죄가 없이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마리아의 승천이 기념되었다. 그밖에도 성인숭배, 고해성사, 선행의 교리, 성골숭배,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여 사는 수도원 생활 등등 온갖 미신적인 행위들이 교회를 더럽혔다.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교황의 힘은 더욱 증대되었다. 그리고 교황 통치의 무거운 짐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여 그리스도의 멍에보다 더 무겁게 만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멍에는 쉽고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하나이시고, 유일하신 감독이시고, 당신의 피로 사신 유일한 교회의 머리이시다.
400 no image 정경의 탄생과 의미_송영찬 국장 (176)
편집부
5214 2012-09-18
정경의 탄생과 의미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만일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사단의 엄청난 공격, 즉 무서운 박해에 의한 공격과 치명적인 거짓 교리에 의한 공격에 저항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기적이다. 때로 이 투쟁은 그리스도인들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도시대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으로 영들을 분별하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사도 시대 때에도 거짓 교리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매우 경건한 듯이 보이는 교리를 가지고 들어왔었다. 그들의 교리는 전혀 경건하지 않았다. 이럴 때 진리를 방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때문에 이 투쟁에서 적지 않은 실패도 나타났었다. 이 투쟁 가운데서 교회는 신자들을 보존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무기를 받았다. 그것이 사도들로부터 받은 성경이었다. 이런 점에서 신자들이 거짓 교리들을 공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선한 길잡이 곧 완성된 성경이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사도시대까지만 해도 교회는 믿음과 생활의 규칙과 규범인 정경으로 사용하는 오직 한 책 곧 구약만 가지고 있었다. 구약은 만장일치로 교회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 구약은 기록함에 있어서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매우 특별한 일을 위하여 이런 사람들을 준비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이 이루어진 때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 아래에서 구약이 기록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구주께서 당신의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우리는 또한 그분께서 구약을 받아들이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그분께서는 교회에게 구약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친히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구속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통치, 새로운 시대를 여셨다. 그 결과 사도들에 의해 신약이 기록되었고 교회에 주어진 것이다. 성경을 정경이라고 말할 때마다 우리는 정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령님에 의해서 영감된 성경책들의 모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인 정경은 우리가 믿는 바와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바에 대한 지침이고, 규범이고, 규칙이다(벨직신앙고백 제5항). 이 말은 더 이상 성경은 기록되지 않으며 신구약 66권 외에는 정경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399 no image 사도시대의 끝이 주는 의미_ 송영찬 국장 (116)
편집부
6601 2012-09-04
사도시대의 끝이 주는 의미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사도 시대는 오순절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사도인 요한이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 기간에 예수께서는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교회들을 설립하셨다. 특별히 이 기간에 성경이 완성되었고 교회의 직분이 세워졌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손안에 있는 매우 특별한 도구였다. 그는 유대인으로 탄생했고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교육을 받았다. 때문에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에 효과적이었다. 바울은 또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헬라어에도 능통했다. 그는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사용하면서도 헬라어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바울은 자신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위해 쉴 새 없이 봉사했는데 세 번의 긴 복음전도여행을 감당했다. 세 번째 복음전도여행 후에 그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했고, 2년 동안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후 로마로 호송되었는데 로마에 있는 셋집에서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자유롭게 복음을 설교할 수 있었다. 바울은 이 첫 번째 심문에서 무죄로 선고를 받았다. 그후 바울을 스페인에 복음을 전하고 소아시아를 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중 그는 두 번째로 투옥되었고 주후 64년경 혹은 68년경에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즈음 요한은 에베소에 도착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박해로 인해 밧모섬으로 유배를 당했는데 그곳에서 계시록을 기록하게 되었다. 계시록을 끝으로 성경의 기록이 완성되었다. 이로써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이 정경으로 교회에 위임되었다. 이로써 교회는 신구약 66권을 정경으로 가지게 되었으며 그것으로 유일한 신앙의 규범으로 삼게 된 것이다. 사도 시대가 끝나면서 성경의 기적들도 종결되었다. 성경의 기적들은 선지자들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사도들이 죽은 후에 이 기적들도 종결된 것이다(고후 12:12). 사도들의 시대가 끝난 후에 교회는 교훈과 치리를 겸한 목사와 치리를 위한 장로와 자비 사역을 위한 집사라고 하는 직원들을 통해 조직되었다. 때문에 목사와 장로와 집사가 없다면 그 교회는 아직 교회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 목사와 장로와 집사를 교회의 항존 직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398 no image 초대교회 시대의 교회 예배 _ 송영찬 국장 (230)
편집부
8526 2012-08-21
초대교회 시대의 교회 예배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처음에 교회의 예배는 매우 소박했다. 사람들은 개방된 장소 혹은 교중 가운데 한 지체의 집에 함께 모였다. 지금과 같은 교회 건물은 거의 없었다. 당시 예배를 드리는 동안 구약의 한 부분이 봉독되었다. 나중에 사도들이 쓴 서신서들과 복음서들이 완성되었을 때 이 서신서와 복음서들이 봉독되었다. 그리고 선지자들이나 복음전도자들이 봉독된 성경의 본문들을 설명했다. 찬송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시편을 즐겨 사용했다. 오늘날과 같이 초대교회의 신자들도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날, 즉 한 주간의 첫 날에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위해 기도했다. 세례는 주로 성인(成人)들에게 베풀어졌다. 이방인들이 날마다 믿음으로 나아왔기 때문이다. 예배의 마지막 부분에 신자들은 주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면서 소위 말하는 ‘애찬예식’(love feasts)을 거행했다. 회원이 많아지고 애찬을 오용하는 사람들도 많아지자 ‘애찬’은 단계적으로 없어졌다. 바울은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고전 11:21-22)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의 만찬 예식, 곧 지금의 성찬식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점차 교회의 예배는 기도와 신앙고백과 성경봉독과 설교 그리고 주의 만찬 기념인 성찬식으로 체계적화 되어갔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 형식은 주로 16세기의 종교개혁으로 결정된 것이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함께 모여서 교회의 왕을 영화롭게 하고 찬미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들었다. 아마도 예배 순서가 많이 바뀌었을지라도 그 예배의 내용은 여전히 동일했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 교회 역사의 일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때의 신자들이나 오늘날의 신자들은 모두 동일한 주님을 고백하고 동일한 말씀에 자신을 복종시킨다. 매주일의 모임이 우리에게 중심이듯이 그때 신자들에게도 중심이었다. 그들과 함께 우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퉁이 돌이 되시는 하나님의 백성, 곧 하나의 교회에 속한 회원이 되는 것이다(엡 2:20).
397 no image 참된 교회의 표지와 교회의 직분_송영찬 국장 (4)
편집부
3485 2012-08-07
참된 교회의 표지와 교회의 직분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참된 교회는 3개의 표지로 구분된다. 곧 올바른 말씀 선포, 성례의 시행, 정당한 권징 등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지 않으며 오직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바르게 세우고 자라게 함에 있다. 교회의 3대 표지와 함께 교회는 꼭 필요로 하는 직분이 있다. 교회는 언제나 말씀 사역자, 장로, 집사의 직분자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목사, 장로, 집사의 직분을 가리켜 교회의 항존직이라고 부른다. 곧 교회는 언제나 목사와 장로와 집사의 직분자들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신자들 그룹만 있다면 그 자체로는 거기에 교회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거기에 직분들이 세워진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교회가 존재하고 그때부터 그 교회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도들이 복음을 설교하는 일에 전념하기 원하였기에 예루살렘 교회는 교중 가운데서 일곱 집사를 선택했다.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일곱 집사들을 통하여 교회 안에 있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게 하셨다. 이때 그리스도는 직분자인 집사들을 사용하여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시는 자비로우신 대제사장이 되신다. 또한 그 초대교회 시대부터 장로들이 있었다. 바울은 이미 첫 번째 복음전도 여행 중에 장로들을 세웠다. 이 장로의 직분은 신자들을 다스리는 일을 위해 세워졌다. 이때 그리스도는 직분자인 장로들을 사용하여 교회를 통치하시는 왕이 되신다. 사도들은 자신을 돕는 자들과 함께 복음 설교를 했다. 나중에 교회가 확장되기 시작했을 때 장로의 직분은 다스리는 직분만 아니라 가르치는 직분이 되었다. 바울은 가르치는 장로를 다스리는 장로와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다(딤전 5:17-18). 이 가르치는 장로가 목사이다. 이때 그리스도는 직분자인 목사를 사용하여 교회를 인도하시는 선지자가 되신다. 이처럼 직분자들은 교회를 다스리고 유지하시는 그리스도의 손에 있는 도구들이다. 즉 그 직분자에게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직분자들을 사용하시는 그리스도의 권위로 말미암아 그들은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역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직분으로 말미암아 각각의 신자들은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교회의 직분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바르게 세우고 자라게 하는 일에 봉사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396 no image 초대교회의 유한한 직분 ‘사도’_송영찬 국장 (30)
편집부
3263 2012-07-24
초대교회의 유한한 직분 ‘사도’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그리스도는 우리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이시고, 교사이시고,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이시고,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다. 그분은 또한 교회 안에 직분들을 설립하신 분이시다. 이 직분들은 그분께서 은혜로 주시는 위대한 선물이다. 신약 교회의 초기에 주 예수께서 사도들을 증인으로 사용하셨다. ‘사도’라는 말은 ‘파송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사도들은 스스로 권위를 갖지 못하고 그들을 파송하신 분의 이름으로 가게 된다. 따라서 사도의 직분은 오직 그 제한된 시대에만 있었던 유일한 직분이다. 이 말은 사도들에게는 계승자가 없었다는 뜻이다. 사도들의 유일성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사도들을 부르시고 가르치셨다는 사실에 있다. 사도들은 계속해서 이 사실을 강조했다(요일 1:3; 행 2:32). 사도들은 교회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사도들의 직분은 특정 교회에 제한하지 않고 모든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사도들의 사역은 미래의 시대를 위한 기초를 놓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던 시대에 장로들과 집사들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또한 신약 성경이 완성되었다는 사실도 대단히 중요하다. 사도들은 대단히 분주했다. 그래서 그들은 직분을 수행함에 있어서 복음전도자들과 선지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 복음전도자들은 직접 그리스도께서 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도들처럼 복음전도자들은 복음을 설교하고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복음전도자라는 직분은 사도시대가 끝난 후에 사라졌다. 그 이후부터 ‘복음전도자’라는 이름은 오직 4복음서 기자들에게만 사용되었다. 이렇게 사도들의 시대는 교회에게 있어서 매우 특별한 시대였다. 사도들은 사도의 권위로 일을 수행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을 도구로 사용하여 교회를 통치하셨다. 사도들은 복음을 설교하는 일 이외에도 그리스도의 권위로 교회를 다스리는 일을 해야 했다. 우리 주님께서 사도들을 데려가셨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완성되었고, 교회는 하나님의 역사의 마지막 시기에 들어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받아들였다. 이제 우리 시대에는 사도가 없다. 아울러 복음전도자나 선지자도 없다. 사도 시대 이후부터 교회에는 말씀 사역 장로인 목사와 치리 사역자인 장로와 봉사 사역자인 집사만 있게 되었다. 교회는 이 직분자들의 봉사를 통해 유지되는 것이다.
395 no image 사탄을 따르는 교인들도 있다_송영찬 국장 (1)
편집부
2551 2012-07-10
사탄을 따르는 교인들도 있다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거짓 교리는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는 첫 번째 방법이다. 이 마귀적 교리는 초대 교회의 교중 가운데서도 나타난다. 그 마귀적 교리는 유대주의자들의 교리였다. 유대주의자들 중 어떤 이들이 “구원은 믿음과 은혜로만 아니라 모세 율법의 한 부분을 지킬 때에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안타깝게도 이 거짓 교리는 모든 죄악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잔존하던 생각들로 인해 기꺼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모든 사람은 구원을 위하여 무엇인가 공헌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은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다. 사도들은 여러 서신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구원은 사람들의 공로가 아닌 ‘오직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교회 안에서 불일치를 조장하는 것이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오늘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완전한 성경을 갖고 있지 않았었다. 이 기간 동안 우리 주님께서는 교회원들에게 성령님의 선물을 허락하셨다. 성령께서는 어떤 이들에게 병을 고칠 수 있게 해 주셨다. 알 수 없는 방언으로 말하는 선물을 받은 지체들도 있었다. 아직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특별한 선물을 허락하신 분은 바로 성령님이시다. 그런데 여러 교중 가운데 주어진 이 성령님의 선물로 인해 시기와 질투가 생겨나게 되었다. 어떤 지체들은 다른 이들보다 자신이 더 나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더 이상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지 못했다. 분리와 불일치가 일어났다. 사탄은 이 특별한 선물들을 이용하여 형제들 가운데 불일치를 조장한 것이다. 그 후 신약성경이 완성되었을 때 우리는 이런 선물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 주님께서 더 이상 그 선물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 오늘 날 교회 안에서 이미 사라진 이런 은사들을 자랑하거나 조장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거짓 교리를 교회 안에 가져 온 사탄을 따르는 자들이다. 교회는 오로지 성경 66권만을 유일한 교리로 가지고 있다. 모든 신자들은 이 교회의 가르침만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신자들은 사탄의 거짓 도구들을 과감하게 거부해야 한다.
394 no image 사탄의 도전 앞에 있는 교회_송영찬 국장 (1)
편집부
2669 2012-06-26
사탄의 도전 앞에 있는 교회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처음 시작된 교회의 분명한 특성 중 하나는 그 교회의 지체들이 서로 사랑하고 이 사랑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었다는 것이다. 1세기에 기독교인들은 재산을 아낌없이 바쳐서 그들 중에 가난한 사람들이 없게 했고, 모든 사람이 조금도 부족함 없게 했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 기독교인들은 모든 것을 나누었다고 보도한다. 돈이나 물질이 부족한 것이 있다면 부자들이 돈을 나눠주기 위해서 자신의 재산 일부를 팔아서 부족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그래서 최초 교회의 교중은 공산주의적(communistic)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최초의 기독교인들이 기꺼이 서로 돕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기독교인들의 생활을 이상적인 교회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도 거짓 교리, 죄, 거짓말과 투쟁해야 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교회에서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상상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결코 한 순간도 안식을 가질 수 없다. 언제나 마귀와 죄와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싸우는 투쟁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단이 교회를 공격함으로써 핍박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모두 다소 출신 사울이 교회에 가한 핍박을 알고 있다. 이 사울은 신생 교회를 파괴하려고 사용되었던 사단의 도구였다. 우리 주님께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이 사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신 말씀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 누군가가 교회를 건드린다면, 그것은 곧 교회의 왕을 건드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리스도께서 이 사단이 사용하는 도구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키셨다. 이로서 기독교인들을 열광적으로 박해했던 사울은 이방인들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손에 있는 도구가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당신의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확정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의 공격에 대항하여 당신의 교회를 모으시고 방어하시고 보존하신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언제나 사탄의 도전 앞에 서 있다는 사실과 그 도전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393 no image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_송영찬 국장 (104)
편집부
5292 2012-06-13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신약시대의 교회는 성령께서 오신 오순절 이래로 시작 되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만 홀로 남겨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성령님을 부어주실 것이라며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고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다. 이 약속에 따라 오순절 이후에,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있었던 사도들은 교회를 배열하고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 교회는 더 이상 유대인들만을 위하여 존재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지교회들(local churches)은 세상 모든 곳에 설립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교회를 다스리시기 위하여 목사들, 장로들, 집사들을 사용하신다.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교회의 조직은 이러할 것이다. 이 세 직분을 가리켜 항존직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곧 교회는 언제나 목사와 장로와 집사라고 하는 직분자들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일단의 세력이 있다. 소위 사단의 수하들이다. 그들은 거짓 교리를 교회에 심으려고 할 것이며 박해를 통해서라도 지상에서 교회를 없애려 할 것이다. 하지만 사단이 아무리 힘을 다해 교회를 파괴시키려고 할지라도 결단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교회는 종말까지 언제나 지상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를 돌보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인데,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으며(마28:18) 음부의 문들이 교회를 내리누르지 못할 것이라는 보증이 되신다(마16:18). 벨직신앙고백 제27장에서는 교회가 세상의 처음부터 존재했고 세상의 마지막까지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고백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1주 54문의 답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 모든 인류 가운데서 영생을 위하여 선택하신 교회를 참된 믿음으로 하나가 되도록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을 위하여 불러 모으고 보호하고 보존하십니다.” 이 사실은 주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놀라운 확신이다.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심을 명심하자.
392 no image 최고의 법으로서 ‘이웃 사랑’_송영찬 국장 (19)
편집부
2829 2012-05-29
최고의 법으로서 ‘이웃 사랑’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야고보 사도는 몇몇 특수한 사람들만을 차별하여 경의를 표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한다(약 2:8-9). 여기에서 말하는 이웃은 인류 전체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어느 누구든 자기가 선택한 몇몇 사람만을 상대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비열한 이익에 순종을 바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낯선 사람들과 심지어 원수들에게 그리고 어떤 의미로든 우리에게 비열해 보이는 모든 사람들을 다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을 차별한다는 것은 이 가르침과 정반대이다. 따라서 외모로 판단한다는 것은 결코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 야고보는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약 2:8-9)고 경계하고 있다. 본문의 ‘법’(law)이란 원칙 또는 명령과 대등한 것으로 그것을 지킨다는 것은 수작을 부리지 않고 정직한 마음의 순정을 바쳐 그것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가운데 ‘이웃 사랑’이라는 최고의 법이란 탁 트인 대로와 같은 것으로 이웃에게 꾸밈없는 사랑을 베풀고 자유로운 사람의 신분으로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와 반대로 사람을 외모로 취한다는 것은 대다수를 제쳐놓고 소수만을 위하는 것으로 이런 사람은 율법의 가르침을 파기함으로써 창조의 질서를 왜곡하는 것과 같다. 때문에 이런 사람을 가리켜 율법의 범죄자라고 야고보는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들 마음대로 그의 율법에서 어떤 조항을 삭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시며 또한 단편적인 순종을 원치 않으신다. 우리가 한 항목만 특별히 중하게 여기고 나머지는 소홀히 여길 때, 또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있어서 우리의 임무를 공평하게 행사하지 못하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한 순종 역시 금이 가기 마련이다. 하나님의 원칙은 언제나 하나이며 일관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올바른 순종을 드리고자 한다면 공평하게 균형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사 30:21). 하나님은 우리가 싫어하는 율법에 대한 순종을 결코 보류하신 바 없으시다. 공평과 공의는 우리 시대의 교회만이 가지는 자랑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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