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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5 (14:11:42)

참여보다 귀한 사역은 없다

 

 

   모든 것에는 그 고유의 역할이 있다. 교회에서의 역할을 우리는 흔히들 사역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 일을 주도하는 책임자를 사역자라 부르고, 그 일을 떠맡은 평신도를 우리는 평신도 사역자라 부른다. 교회가 하는 사역 중에는 본질적 사역도 있고, 비본질적 사역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란 지교회만을 말하지 않는다. 보다 넓은 의미의 공교회로 노회와 총회도 포함하는 말이다.


   교회 사역을 맡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주관심사가 있다. 참여 인원으로 인한 노심초사이다. 이는 사역자가 사역의 성공 여부를 가리는 첫 번째 주제이기도 하다. 성경 공부 모임을 시작해도 그렇고, 교육 부서를 맡아도 그렇고, 말씀집회를 열어도 그렇고, 무슨 행사를 주관해도 그렇다.


   책임 맡은 사역자라면 누구나 그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 참여자 숫자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교회의 규모를 따질 때도 예배 참여 숫자를 그 기준으로 삼는 것을 보면 사역과 참여숫자는 여간 밀접한 관계가 아닌 게 분명하다.


   사역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유형은 다양하다. 예컨대 교회마다 교회 사역이라면 할 수만 있으면 모두 참여하려는 열정적인 성도들이 있다. 이들은 예배나 활동이나 대회나 구분 없이 개근을 추구하며 열정을 쏟는 충성된 일꾼들이라 하겠다. 또한 자신에게 이익이 되거나 즐겨하는 분야에만 참여하는 성도가 있나 하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경우에만 참여하는 성도도 있다. 물론 그때그때 형편 따라 참여하는 이가 있나 하면, 예배 외의 사역엔 아예 외면하는 성도들도 적지 않다.


   교회마다 이러한 다양한 유형의 성도들을 잘 아우르면서 목회하는 중에 있을 줄로 안다. 공적인 예배처럼 본질적 사역이라면 끊임없이 참여의 당위성을 일깨워 줘야 하고, 비본질적 사역이라면 함께 하기 위한 홍보는 극대화하되, 구체적인 제안과 권면은 최소한에 그치는 게 좋겠다. 성도에게 비본질적인 사역으로 부담을 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역에 대한 참여는 성도들만의 주제는 아니다. 노회와 총회에 참석하는 총대들도 예외 아니다. 이제 곧 봄 노회가 개회될 텐데 노회에 참석하는 노회원들도 심기일전할 필요가 있다. 누구든 자기가 속한 조직에 대한 첫 번째 의무는 그 조직의 정기 모임에 참석하는 일이다. 그 의무 성실에 위반할 때는 그 경중에 따라 대가를 치르는 게 기본적 상식이다. 목사는 더욱 그렇다. 목사가 노회에서 세움 받고 노회에 소속된 게 사실이라면, 지교회 목사로서 노회 안에서의 사역 중 노회 참석, 그 자체보다 중한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여 아무런 사전 사유서 하나 없이 무단으로 노회에 불참한다면, 그것도 연속으로 되풀이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제재나 개선의 노력도 없는 노회라면, 그건 정말이지 어둠의 세력 외에는 우리 중에 누구도 바라지 않을 가장 난감한 모습의 노회라 하겠다. 조직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 조직을 아우를 수 있을 때 그 자체의 권위가 생기기 마련이다. 누군가 무단으로 연속하여 노회에 불참해도 전혀 손쓸 수 없는 무기력한 노회라면 어떻게 거기서 영적인 권위를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느 노회나 어느 교단인들 예외 없는 일이지만, 노회나 총회에서 사실상 발언하며 회의를 이끌어가는 총대들은 몇몇 손에 꼽을 정도에 그친다. 나머지 80-90%의 총대들은 발언 한 번 하지 않고 23일을 꼬박 앉아 회의에만 참석하다가 돌아간다. 그럼 총회는 누가 이끌어 가는가?


    비록 발언은 소수가 하지만 회의를 이끌어가는 동력은 발언자들이 아니라 말없는 다수의 참석자들에게서 나온다. 그들은 다른 회원의 발언을 진지하게 경청하며 스스로 사리 판단을 내리며 회의의 흐름을 이끌어간다. 그들은 그냥 앉아 있는 방청객이 아니다. 방청객은 방청 여부가 자신의 뜻에 달려있지만 총대는 참석 여부가 내 뜻이 아니라 지 교회와 노회의 뜻을 받들고 있기 때문이다. 노회와 총회가 보다 큰 범위의 교회라면 노회와 총회의 의결은 그 엄중함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발언자를 발언자대로 사용하신다면, 말없는 다수의 참여자 역시 그 몫대로 사용하시는 거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에 있어 참여만큼 귀한 사역은 없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무슨 사역을 하느냐?’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 ‘얼마나 큰일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일에 진정성을 갖고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여기서의 진정성이란 하나님의 영광을 말한다.


    하나님 나라는 앞장서서 일하거나 유력한 발언자들이 이끌어 가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끌어 가시는 거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중심으로 360도 원을 그리며 참여하는 뭇 참여자를 동일한 영광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의 참여 활동을 대수롭잖게 생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영광이 걸린 사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나님 앞에서의 성도의 영광된 순간이 어디 예배뿐이던가! 하물며 보냄 받은 총대가 파송자의 뜻을 거스르면서, 어찌 하나님의 영광을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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