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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2 (00:00:00)
http://www.rpress.or.kr/files/sinhak/jun.hwp정승원교수의 현대신학해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 (1)

바르트 以後 신학계에 그와 견줄만한 학자는 판넨베르크 외에는 없다고 이야
기들 한다. 그의 신학의 독창성과 깊이에 따른 칭찬의 소리라 할 수 있다. 그
리고 역사적 사실의 중요성(예를 들어, 부활의 역사성)이나 보편적 진리의 탐
구를 강조하는 그의 신학적 방법 때문인지 보수 신학계에서도 그를 환영하는
편이다. 그러나 한편 그의 신학에 매우 위험한 요소들이 숨어 있음을 간과해
서는 안될 것이다. 판넨베르크 역시 다른 현대 신학자들을 대할 때와 같이 비
판의 눈으로 바라보되 배울 점은 배우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판넨베르크를 희망의 신학자로 분류한다. 물론 그의 신학에 종
말론적, 미래적 특징이 다분히 있지만 그 자신이 몰트만을 비판했던 터이요,
그의 역사 개념은 희망의 신학자들의 그것과는 다르므로 단순히 그를 희망의
신학자로 분류하는 것은 정확한 진단이 아니라고 하겠다. 그는 바르트와 같
이 공부
도 했고 여러 성서 학자들과도 많은 교제를 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신
학적 틀은 헤겔 사상에 의해서 짜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그를 칸
트의 사상적 틀에 기초한 이전 현대 신학자들과 다르게 보는 이유일 것이다.

칸트적 이성 비판을 넘어서 새로운 이성의 합리성을 찾으려는 그의 신학적 방
법은 헤겔에서 왔다고 하겠다. 특히 마지막 종말이 될 때까지는 우리는 절대
적 진리를 알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은 부분적 진리도 진리로 주어지지만 절대
적 진리는 항상 전체에 담겨져 있다는 헤겔의 사상에 근거한 것이라 하겠다.

판넨베르크의 신학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그는 믿음(faith)과 이성
(reason)의 관계를 나름대로 정립했다. 그는 믿음을 일종의 결단(commitment)
으로 보면서 그 결단의 유효성은 그 대상, 즉 그 진리성이 얼마나 믿을 만 하
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즉 신뢰라는 것은 단지 이론적 인식이 아니라 어
떠한 사실이 진리라는 것을 믿는 것과 관련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역사적,
자연적 사실이 그 믿음을 얼마나 잘 받혀주느냐에 따라 그 진리성이 좌우된다
는 말이다. 이러한 것을 근거로 보이지 않는 하
나님의 실재(reality)를 믿을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고백서 같은 것은 의심
의 여지가 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실재란 미래에서부터 혹은 종말에 가
서 밝혀지는 실재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판난베르크는 주장하기를 역사의 종말에 가서야 우리는 해답을 얻게
되고 모든 것의 진실이 밝혀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 삶에 혹은 자
연 속에서 절대적 기준이나 법을 성취할 수 없고 어떤 이론적 확실성을 찾으
려고 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현 제한된 세상
과 실재를 더 확실한 방향으로(미래적으로) 이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믿음에 관한 판난베르크의 주장은 단지 믿음을 이성과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이란 합리적 증명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주장하
는 것이다. 진리란 단지 우리 의해서 혹은 우리가 믿으려는 의지에 의해서 세
워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관찰을 통하여 세워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
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가 믿기 때문에 혹은 우리의 주장에 의해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진행 혹은 관찰을 통해서 진실 된 사실이 된다는 것
이다. 이러한 말을 들으면 마치 우리 개혁주의가 믿는 부활 개념과 비슷하다
고 생각할 찌 모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과거의 사
실로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사실적 증명이 역사속에서 진행되고 그것
이 종말에 가서 밝혀지는 것으로 그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과
거 사건으로서 예수의 부활은 그렇게 믿기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부활과 상반된 주장인 것이다. 바르트가 예수의 부활
을 믿는다고 했지만 그가 말하는 부활은 참 실재적 역사(Geschichte)와 직접
적 관계가 없는 차원의 부활이었다. 즉 믿어도 손해볼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이
었다. 마찬가지로 판넨베르크가 주장하는 부활도 과거 역사 속에 확실하게 발
생된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종말에 가서 밝혀지는 부활로 지금 믿어도 손해볼
것은 전혀 없다는 식이다.

이러한 역사적 진행 혹은 과정 속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합리적 증명이요 비
판적 관찰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판넨베르크는 믿음과 이성의 관계를 정립하
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성적 역할을 멀리하고 어떤 도그마로 혹
은 고백서로 혹은 전통으로 기독교 믿음을 유지하려는 것은 참다운 믿음의 특
징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독교의 믿음의 참다운 특징은 현시
적 연약성을 인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역사적 과정에 맡기는 모습이라는 것이
다. 이러한 믿음의 특징은 바로 이성의 합리성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판넨베르크 신학의 역사적, 비판적, 합리적, 과정적 틀 속에는 기독교
의 역사성이 강조되고 심지어 명제적(propositional) 계시의 특징도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도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역사성과 성경의 계시
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삼위
일체 하나님과 그의 계시가 출발점이 되고 있지만 판넨베르크 신학은 헤겔적
역사 개념의 틀에서 출발한 것이며 하나님과 그의 계시는 이 틀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인정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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